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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를 합시다]하희선/˝나 먼저 살자˝ 장기매매…

입력 | 2002-05-13 18:29:00


오늘도 황달로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고 복수로 배가 남산만큼 불러 걸음조차 힘든 환자가 간이식 등록을 위해 사무실을 방문했다. 간이식만이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가족들은 모두 B형 간염 보균자여서 기증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뇌사자 간이식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대기자로 등록을 했지만 몇 년을 기다려야 그 순서가 올지 너무나 막연하다.

현재 뇌사자 간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는 전국적으로 1000여명에 이르지만 1년에 겨우 30여명만이 이식을 받을 수 있는 실정이며, 신장이식의 경우도 대기자는 3400여명인데 1년에 90여명만이 이식을 받을 수 있다. 언제쯤 그 순서가 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환자들로부터 얼마나 기다려야 순서가 오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장기이식 수술이 시작된 지 30여년이 지나 이제 각 분야의 장기이식이 선진국 수준을 넘어 그 성적이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이식 수술은 누군가가 기증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살아 있는 사람이 기증할 수 있는 이식인 경우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주위 친척, 그리고 지인들에 이르기까지 기증자를 찾게 된다. 환자와 그 가족들은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기증자를 찾아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고, 남보다 내가 먼저 이식을 받고자 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 장기 기증을 위한 사이트를 개설하고 장기매매를 알선한 사람들이 구속되었고, 아직도 병원 화장실과 지하철 등에 장기기증 광고물들이 눈에 띄고 있다. 또한 이러한 틈새에서 장기매매를 연결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 온 기증자들에게 검사비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한 사람들이 구속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국내에서는 2000년 2월부터 장기매매를 근절하고 공정한 장기이식 보급을 위해 장기이식 관리가 국가관리체제로 전환되었지만 뇌사자 장기기증 수는 오히려 격감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뇌사자 장기기증자는 3분의 1 정도로 감소했고, 이식을 받아야 하는 대기자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는 부정한 방법을 없애기 위해 국가가 관리하다보니 뇌사자의 장기이식 절차가 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뇌사판정위원회의 판정절차, 검찰과 경찰에 신고하는 행정절차 등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장기이식 대상자도 전처럼 병원 내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직접 지정해주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져 뇌사자 장기이식의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막연히 기다릴 수만 없는 환자 가족들이나 불법조직들에 부정한 장기매매 등의 유혹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공정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장기의 분배가 이뤄지려면 정부는 우선 장기이식의 복잡한 행정절차를 개선해서 신속하고 효율성 있는 장기이식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장기기증에 대한 홍보를 병행함으로써 우선 장기기증자의 수가 증가해 그 혜택이 여러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희선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