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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남찬순]´弘3 의혹´ 물타기와 월드컵

입력 | 2002-05-13 18:29:00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의 귀국이 임박한 분위기다. 그가 검찰에 소환되면 형사처벌은 불가피할 것 같고 2남 홍업(弘業)씨도, 아직은 형제 모두를 감옥에 보낼 수 있겠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바로 동생의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두 형제가 챙겼다는 20억∼30억원이 어디 작은 돈인가. 여기에다 “그뿐이겠느냐”는 얘기들도 적지 않다.

5년 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는 검찰에서 철야 조사를 받은 후 바로 구속됐다. 이번에는 대통령의 두 아들이 다 그래야 할 처지다. 하지만 어쩌랴. 대통령의 아들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처벌받을 수를 놓고 흥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아들이 아닌, 세 아들이라도 예외를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홍걸씨나 홍업씨는 진작 진실을 밝혀야 했다. 소환이든 자진출두든 법 적용에는 별 차이가 없겠지만 왜 지금까지 제 발로 출두하지 않고 국민의 분노만 샀는가. 탈출구를 찾으려고 온갖 수를 부리다 어쩔 수 없어 검찰에 불려오는 초라한 모습만 보이게 됐다.

▼권력의 보료는 없다▼

첫째, 홍걸씨와 홍걸업는 이제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특권의식을 철저히 버려야 한다. 어떤 권력도 영원한 보호막이 될 수는 없다. 더 이상 권력의 보료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화려했던 시절에 대한 미련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그런 미련에 매달리다 보면 사람만 오히려 우습게 된다.

지난 8일 민주당 의원 총회에 참석했던 김 대통령의 장남 홍일(弘一) 의원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홍일씨는 의원들이 간단한 겉치레 인사만 하고 지나가자 “나는 당원도 아닌가 봐. 몇 달씩 떠나 있었는데도 안부 하나 묻지 않네”라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몇 달 전 미국으로 떠날 때의 하늘을 찌를 듯했던 위세가 여전히 칼날처럼 치솟고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두고 볼 일이지만 검찰에 나오는 홍걸 홍업씨 역시 비슷한 착각을 할 가능성이 있다. 5년 전 현철씨는 검찰에 들어가기 직전 자신이 무슨 역사적인 인물이나 된 것처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남겼다. 그 글에 감동받고 등 뒤에서 작별의 손이나마 흔들어 준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홍걸 홍업씨가 곰곰이 되돌아보아야 할 5년 전의 상황이다.

권력이 떠난 자리에는 허허한 바람만 불 뿐이다. 그 허허한 자리에 혼자 서 있다고 생각하면 한결 편할 것이다. 그리고 고백성사하듯 모든 진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밝히기 위해 노력하라. 그것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아버지’의 품위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둘째는 검찰의 자세다. 이번 수사는 미진할 경우 어차피 특검 쪽으로 넘어갈 여지가 많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처음에는 그럴 듯하게 큰소리 치다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는 이벤트성 수사는 결국 검찰만 망신시킬 것이다. ‘재수술’이 필요 없는 완벽한 ‘수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월드컵 개막 전에 수사를 끝내야 한다는,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얘기가 나돌아 주목되고 있다. 월드컵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축제인데 대통령 아들들 문제가 그 축제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지구촌의 시선이 온통 쏠리는데 대통령 아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나라 수치가 아니냐는 것이다. 말은 맞다. 그러나 왜 일이 여기까지 오도록 만들었는가. 마치 월드컵 개막 날짜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행사가 눈앞에 다가온 시점에 와서야 손을 빨리 털자고 한다면 그 의도가 불순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권력의 뒤편에는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도 그래서 나온다.

▼얄팍한 피해가기 계산?▼

월드컵 개막은 이제 겨우 보름 정도 남았다. 아무리 뒷조사를 다 한 사건이라 해도 보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월드컵 열기를 타면 ‘홍3 의혹’이고 뭐고 다 잊게 될 것이기 때문에 ‘홍걸 홍업씨 구속’이라는 명분만 갖춰놓고 후닥닥 넘겨버리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들 둘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르는 부모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월드컵 열기를 이용해 어떻게 하든 ‘홍3 의혹’ 수사에 ‘물타기’를 해 보려는 인사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실 월드컵 행사는 지구촌을 축제 분위기로 몰아가고 ‘홍3 의혹’도 그 열기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은 한순간 지구촌을 열광시키는 행사로 끝난다.

월드컵 축제가 끝난 자리에도 ‘홍3 의혹’은 여전히 무성할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막이 내려지지 않는다. ‘홍3 의혹’을 월드컵 행사로 ‘물타기’하는 얄팍한 수만 쓴다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남찬순 논설위원 chans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