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앤드 마리오'의 주방장 마리오 감비노가직접 만든 '하워드 칠리버거'
《평일 오후의 명동. 교복 입은 학생들, 목소리 큰 중국인들, 목소리 작은 일본인들, 간만에 ‘땡땡이’치고 나온 회사원들이 한데 모여 왁자지껄이다. 좁은 골목길에도 이따금씩 중장비 트럭이 지나가며 소음은 더욱 증폭, 낮부터 ‘록카페’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현란한 간판의 패션숍, 대형 전자오락실, 미용실, 발마사지 전문 숍, 신발가게 등을 차례로 살펴보면 명동의 ‘회춘’ 분위기는 더욱 역력해진다.
장터로서의 명동을 완성하는 마지막 업종은 음식점. 명동의 외식공간도 이 회춘의 기미를 뚜렷이 보여준다. ‘변화와 개혁’과는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던 전통의 사보이호텔에 다양한 패밀리 레스토랑이 들어섰는가 하면, ‘명동에만 있는’ 틈새 외식공간의 경쟁력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사보이의 변신
사보이호텔은 최근 새 단장을 마친 3개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와 요리 사진을 호텔 외벽에 대형 간판으로 내걸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캘리포니아 피트니스센터와 복합쇼핑몰 ‘캐츠21’이 둘러싸고 있어선지 근처의 유동인구는 더 늘어났다.
‘하워드 앤드 마리오’는 미국에서 칠리요리 전문가로 활동 중이던 마리오 감비노를 대표 주방장으로 영입해 올해 3월 문을 연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230㎏의 거구인 그가 사람들에게 햄버거를 서빙해 주는 것만으로도 허기진 배가 푸짐해지는 느낌이다. 미국과 멕시코식이 결합된 이곳에서 첫눈에 띄는 메뉴는 ‘하워드 칠리 햄버거’. 돼지고기 반 근에 해당하는 300g짜리 패티를 수작업으로 만들며, 양파 치즈 칠리 피클 등 부재료도 큼직큼직하기로 유명하다. 풀사이즈(8500원), 1/2사이즈(4600원)로 나눠 팔기 때문에 양에 맞춰 먹을 수 있다. 평일 오전 8시부터는 뉴욕이나 런던의 비즈니스 구역을 연상시키듯, 직장인들이 아침식사를 하느라 붐빈다.
스크램블드 에그, 프렌치 토스트, 시럽을 얹은 팬케이크, 감자, 오믈렛, 야채샐러드 중에서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자체 베이커리가 있어 오전에 가면 갓 구워낸 호밀빵 보리빵을 사 먹을 수 있으며 열대과일 알맹이를 넣은 ‘버블티’도 판다. 메인요리 중 3000∼6000원대 메뉴가 많아 여타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지하1층 '구디구디'바의 인기메뉴인 과일볶음밥, 자장스파게티
지난달 개보수 작업을 마친 지하 1층의 ‘구디구디’는 80년대풍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려, ‘20년 전 명동’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다. 화려한 조명기구를 배제한 대신 은은한 목조 분위기를 살렸다. 시끄럽지 않은 라이브 공연을 들으며 맥주나 칵테일 한 잔 하기에 좋다. 이곳의 스파게티 중에는 카레 자장 고추장 된장소스를 얹은 것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퓨전푸드이지만 한국식 양념이 잘 조화를 이뤄, 집에서 만든 볶음국수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과일볶음밥(8000원)은 사과 파인애플 바나나 키위를 넣고 해산물 김치 등 주재료와 함께 볶았다. 과일향이 잘 살아나고 개운해 볶음요리의 느끼함이 사라진다.
2층에는 이탈리안 패밀리 레스토랑 ‘프레스코’가 올해 초 입점했다. 이 곳은 원래 80년대 초까지 ‘잘 나가는 청춘남녀’의 맞선자리로 애용되던 커피숍 자리였다. 각종 파스타와 리조토, 피자 등을 판매한다. 저녁에는 대기석까지 만석으로, 평일에도 하루 700∼1000명이 들른다.
사보이호텔 근처에는 스타벅스, 시애틀익스프레스 커피점 외에도 벌꿀향이 가득한 빵을 파는 ‘씨나본’, 손에 묻지 않는 고구마 튀김을 파는 ‘빠스’, 이탈리안 소다수와 오미자 모과 등 한국전통차를 파는 ‘오하나 커피’ 등이 있어 디저트 먹을 곳 고르기도 어렵지 않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 사보이 호텔은…
사보이호텔은 1948년에 문을 연 뒤 1957년 정식으로 법인등록을 했다. 당시 워커힐, 조선호텔과 함께 ‘빅3’ 호텔로 꼽혔다. 80년대 초반에는 ‘양은이파’ 등 조직폭력배들이 ‘명동접수’를 과시하는 수단으로서 사보이호텔을 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70∼80년대 초반 지하1층 바에서는 김세레나 문주란 이은하 태진아 등이 라이브 공연을 펼쳤었다. 사보이호텔 별관의 칭기즈칸요리, 철판구이, 중국요리, 일식당 등은 명동 최고로 손꼽혔으나 지금은 호텔과는 관계없는 패션숍들에 임대된 상태다. 2001년부터 위탁경영을 맡은 세종호텔은 ‘사보이 외식사업의 제2부흥’을 꿈꾸며 최근 본관에 패밀리 레스토랑들을 잇달아 오픈했다. 사보이호텔 1층 주차장의 요금표 ‘30분에 3000원’이 상징적으로 드러내듯이, 이곳은 사보이의 부침과 관계없이 여전히 평당 1억원이 넘는 서울시내 특 1급 상업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