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는 탈북자 문제를 귀찮고 골치 아픈 문제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뚜렷한 해결책도 없는데 자꾸 넘어오고, 북한이나 중국을 자극해선 안 되는데 외국 대사관으로 무턱대고 돌진하니 어떡하란 말이냐”는 푸념을 자주 듣는다. 비정부기구(NGO)나 언론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못마땅해 한다. 이런 문제일수록 조용히 풀어야 하는데 떠들어대니까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이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탈북자 문제만큼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급증하는 탈북 주민들의 망명 시도 앞에서 언제까지 ‘조용한 해결’만을 되뇔 것인가. 좀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로 문제에 접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답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탈북자 문제를 일종의 정책수단으로 보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사실 이 문제는 한반도와 그 주변의 현상유지(status quo) 체제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정책수단의 하나다. 왜 그런가.
탈북자 문제는 북한 정권에 체제변화의 압력을 가중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그 수가 크게 늘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탈북의 동기(動機)가 갈수록 ‘식량난’에서 ‘미래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고 있어서 더 그렇다. 왜 탈북하는가. 이 체제 아래에선 나와 내 자식들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탈북하는 것이다.
3월 베이징(北京)의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했던 탈북자 최병섭씨(52)가 “한국에 가면 막내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했던 것은 상징적이다. 2000년 5월 탈북했던 박철진씨(25)는 이미 “제2의 정주영씨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 탈북’이 급증하고 있고 20, 30대가 전체 탈북자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변화가 북한체제의 점진적 변화와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활용할 필요가 있다.
탈북자를 돕는 국내외의 많은 NGO도 이런 접근에 도움이 된다. NGO들은 정부의 짐을 대신 짊어지거나, 정부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 적절한 역할 분담만 이뤄진다면 탈북자 문제 해결에 크게 보탬이 된다. 서로 불신하거나 불편해 할 이유가 없다.
중국이라는 ‘유수지(遊水池)’가 있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물을 모았다가 넘치지 않게 조금씩 흘려주듯이 중국은 탈북자들을 일단 품었다가 서서히 내보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물론 중국이 의도적으로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리적 역사적 인접성으로 인해 웬만한 탈북자들은 망명 전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까지 중국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에 생겨난 기능이다. 어쨌거나 수십만 탈북자들이 한꺼번에 밀고 내려오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대충 따져보아도 이 정도의 조건과 환경이라면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소극적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잘만 활용하면 탈북자 문제도 풀고 북한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의 제안처럼 탈북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다자간 협의체라도 출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진전이 될 것이다.
중국적십자사를 끌어들이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중국적십자사에 탈북자 문제 논의를 위한 회담을 제의하는 것이다. 인도적 문제이니 중국 측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한중 양국 정부를 비켜가니 정치적 부담도 크지 않을 것이다.
탈북자 문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본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관료적 타성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해법은 있어 보인다. 귀찮다고 언제까지 피해 갈 것인가.
이재호 국제부장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