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환자 이모씨(56)는 요즘 속이 바싹바싹 탄다. 그는 항암주사를 외래에서 맞으면 치료비의 55%, 입원해서 맞으면 20%를 본인이 부담하는 ‘희한한 건강보험 규정’ 때문에 입원을 원하지만 병실이 나지 않아 며칠째 치료를 못 받고 있다. 즉 외래에서 치료받으면 한번에 치료비를 70만원 정도나 더 내야 한다.
“입원을 못해 암이 온몸으로 번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끔찍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가족에게 돈을 더 들여서라도 외래에서 치료받게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박모씨(59)는 올초부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중소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병명도 가르쳐주지 않고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만 말했다. 박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중소병원과 달리 ‘심인성(정신탓)’이라며 안심을 시킨 뒤 약을 처방해줬다.
▼글 싣는 순서▼
- ①병 고치러 갔다 병 걸린다
- ②응급실 시설-인력 태부족
- ③ '목숨'있는곳에 의사가 없다
환자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치료를 못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의사들은 “새 치료법은 물론이고 교과서에 나오는 치료를 해도 보험에서 삭감당하기 일쑤여서 적정 진료가 불가능하다”며 보험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반면 일부 의사들이 생사람을 잡는 치료로 돈벌이를 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경희대의료원은 지난해 혈우병 환자의 진료비가 삭감돼 1억5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병원 측은 “환자에게는 필요한데도 규정량 이상으로 썼다고 지혈제 값이 무조건 삭감됐다”고 말했다.
수술 전 간기능 검사와 심전도 검사료, 수술 시 산소호흡료 등은 보험에서 삭감된다. 암이 뇌로 전이됐는지 의심돼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가 암이 전이되지 않은 것으로 판명나면 보험료를 삭감당한다.
미숙아에게 쓰는 주사바늘도 ‘3일에 1개’인 기준을 넘으면 보험을 인정하지 않는다.
보험료 삭감은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개원가에서도 일반적인 일이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환절기마다 편도선이 부어올라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고 나았죠. 올해는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 의사에게 물었더니 의사가 한숨을 쉬면서 얘기하더군요. 보험 때문에 고가약을 처방하지 못해 저가약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요. 약을 비싼 것으로 바꿨더니 금세 나았어요.”(이모씨·62·여)
상당수 의사들은 의약분업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악화가 주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보험 재정 파탄은 이전부터 예견됐고 필연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국민의 23%가 가입돼 있는 공보험을 위해 예산의 19%가 투입되고 있지만 우리는 2.43%에 불과하다. 또 건보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율도 소득의 3.63%여서 선진국의 10∼20%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것.
이 와중에서 일부 의사들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환자에게 불필요한 수술까지 해가며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
현재 허리디스크, 뇌중풍, 관절염 등의 환자 중에 필요없는 수술을 받고 소송까지 진행 중인 경우도 있다. 또 병원들이 정상 치료를 했을 때 따르는 손실을 불필요한 진단 및 치료로 보전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충분히 살 수 있는 환자는 적정 진료를 못 받아 숨지고 멀쩡한 환자가 수술대에 오르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보험삭감’부작용 해소는…▼
“적정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적정 보험수가’부터 다시 책정돼야 합니다.”
관동대 한동관(韓東觀·한국의료법학회 회장·사진) 의무부총장은 “당국은 의사에게 적정진료를 강요하고 있지만 현행 보험수가 체계는 당국이 말하는 적정 진료마저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치료 과정에서 ‘위험’이 따르는 중환자일수록 보험수가가 낮고 ‘소신 진료’를 했을 때에도 ‘과잉 진료’라는 이유로 보험에서 치료비가 삭감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 국가는 재정지원을 해서라도 의료진의 ‘소신 진료’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 부총장은 국가가 민간 의료기관의 진료행위에 간섭하면서 경영책임은 병원에만 떠넘기는 관행도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그는 또 적정 보험수가를 책정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도 ‘싼값’에 ‘최고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건강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현재 국민이 부담하는 보험료는 소득의 3.63% 정도로 △프랑스 19% △독일 15∼16% △대만 9∼13% 보다 낮다.
그는 “대학병원의 ‘첨단 진료’나 ‘실험적 진료’는 환자의 회복은 물론 의학 발달에 큰 기여를 하는데도 현행 건강보험제도에 가로막혀 의술의 ‘하향평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며 “보험료 인상이 어려우면 최소한 사보험이라도 도입해 이 같은 병폐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