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정권 출범 이후 꾸준히 감소해 온 공무원 정원이 다시 늘고 있다. 올들어 늘린 공무원 수만 1만3752명. 김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 같은 정부의 ‘몸집 부풀리기’도 임기 말 레임덕(권력누수)을 틈탄 부처이기주의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다.
즉 내년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역대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정부조직의 군살빼기 작업의 일환으로 공무원 정원을 감축할 것으로 예상하고 각 부처가 사전에 최대한 정원을 늘려놓으려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둔 공직사회의 분위기 이완 또한 각 부처의 경쟁적인 공무원 정원 증가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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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행정수요 때문?〓정부 관계자는 “법령이 개정되거나 새로 만들어지고 시설 장비 등이 도입되면서 증원이 불가피한 측면이 인정된다”고 공무원 정원 증원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교원을 제외하고 증원이 확정된 공무원 정원은 각 부처가 당초 요구한 숫자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각 부처가 실제 증원된 인원보다 10배 이상을 요청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임기 말의 혼란한 틈을 타 각 부처가 ‘안 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일단 증원 요청부터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새 정권이 ‘작은 정부’ 카드를 꺼낼 것에 대비해 미리 충분한 인력을 확보해 두자는 계산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무원 수급예측의 오류?〓정권 말기마다 공무원 정원이 늘어나는 것은 정권 초의 수급예측이 성급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 초기에도 구조조정과 개혁분위기에 편승해 공무원 정원 대폭 축소 방침이 결정되다 보니 정확한 행정수요나 수급상황에 대한 예측이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교원수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교원정년을 단축했다가 교원 부족사태가 빚어지자 퇴직교사를 재임용하는 등의 정책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동서(朴東緖)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 등의 이유로 초기에 공무원수를 무리하게 줄였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복지 등 아직 국가가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분야가 많아 ‘작은 정부론’을 외치는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임기 말 자리 늘리기〓공무원 정원은 현 정부 출범 직전인 97년 말에 비해 총 5만3000여명이 감소하긴 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출범 초 공약한 8만5000명 감축 목표에는 크게 못 미친다.
장·차관급 정원은 오히려 증가했다. 97년 102명에서 98년 89명으로 줄어들었다가 올해 4월 말 현재 106명으로 늘어났다. 정부 측 설명대로 신규 행정수요 발생요인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고위직 증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한 행정수요가 증가한 부분 못지않게 감소한 부분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공무원 정원 증가는 인적자원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재창(朴載昌·행정학) 숙명여대 교수는 “행정수요 변화에 따른 인적자원 배분노력이 뒤따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공무원 수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정권 초기와 달리 지금은 각 부처에 배정된 정원의 범위 내에서 자리를 재배치하는 자체 노력 없이 증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