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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26…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26)

입력 | 2002-05-21 18:34:00


무당2 (밤길을 걷는 술주정뱅이처럼 밀양 아리랑의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부른 후 다른 노래를 부른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심는 두메산골 내고향에① (또 다른 노래가 생각나) 물어 물어 찾아왔소 그 님이 계시는 곳 차가운 밤바람이 몰아치는데 그 님은 보이지 않네②

무당3 (건성으로) 아이고, 우리 동자, 잘 한다!

무당2 (목청을 돋우어) 저 달 보고 물어본다 님 계신 곳을

무당3 잘 한다, 잘 해!

무당2 울며불며 찾아봐도 그 님은 간 곳이 없네

이신철은 자기 무릎을 꽉 잡은 팔에 힘을 주고 울부짖는다.

무당2 삼촌이 울고 있어. 마음은 굴뚝같은데 돈이 없어서. 일본에서 온 조카딸한테 맛있는 것도 먹이고 싶고, 좋은 옷도 사주고 싶은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괴로운 거야, 마음이 아픈 거야. 삼촌은 아무 말 안 하지만, 살기가 힘든 거지?

이신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비비듯 눈물을 닦는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무당2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돈이 없어.

이신철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리지가 않아요…식용견을 번식시켜서 내다 팔았는데 밥벌이가 안 돼서…전부 팔아넘기고(손수건에다 힘껏 코를 풀고) 어떻게든 일거리를 찾아야 할 텐데….

무당2 내 년 여름부터는 풀릴 거야, 올해는 안 좋아, 올해는 고생이 아직 남았어, 할배가 그렇대.

이신철 (또 눈물을 흘린다) 조카딸한테 감사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아들인 내가 해야 하는 굿인데….

무당2 아재가 울면 할배도 울어. 아들 딸 손 꼭 잡고 죽고 싶었다고. 할배는 죽기 전에 아재를 몹시 보고 싶어했어.

①유정천리 - 김부해 작곡 반야월 작사

②님 그리워 - 심형섭 작곡 심형섭 작사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