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행했던 ‘조폭영화’엔 속칭 ‘맞장뜨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때 승부는 대부분 초반 기싸움에서 결정된다. 스포츠도 싸움과 마찬가지다. 강적을 만나 ‘우린 안돼’하고 자포자기하면 백전백패다. 반면 죽을 각오로 싸우면 이길 수도 있다.
2000시드니올림픽때 일이다. 예선 첫경기에서 스페인과 만났다. 선수들은 유럽의 강호와 싸운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부터 선수들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주눅들지 말고 자신있게 싸우라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허둥대다 0-3으로 완패했다.
21일 한국축구대표팀과 잉글랜드대표팀의 평가전에서 한국선수들은 절대 열세란 평가를 뒤엎고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1-1로 비겼다. 희망을 보는 순간이었다. 잉글랜드가 어떤 팀인가. 축구종주국에 세계랭킹 12위의 강호다. 물론 평가전이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우리 선수들은 완벽하게 플레이했다.
무엇보다 당황하지 않았다. 경기초반 긴장한 탓에 잉글랜드에 밀리는 경기를 펼쳤지만 예전과 같이 어이없이 무너지지 않았다. 솔직히 마이클 오언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을 때 걱정이 앞섰다. 또 고질적인 ‘강팀 징크스’가 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선수들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플레이를 펼쳤다. 후반엔 오히려 잉글랜드를 압도할 정도로 밀어붙였다.
스포츠는 자신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대표팀은 26일 2002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인 프랑스와 맞붙는다. 프랑스는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지네딘 지단과 티에리 앙리 등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팀이다.
게다가 한국은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0-5로 대패한 아픈 기억까지 있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잉글랜드를 상대했듯이 자신있게 나서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프랑스가 아니다. 프랑스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찾으면 된다. 마지막 평가전인 만큼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유의해 할 것이다.
허정무 본보축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