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섭씨(41)의 이른 출근길. 네 살배기 막내가 잠결에 인사한다. “아빠,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는 아들의 엉뚱한 말에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 모습을 더듬는다. ‘그래 그런 날이 오겠지’라고 되뇌며 집을 나섰다. 그날의 에피소드는 ‘아빠, 안녕히 가세요’란 시가 되었다.
“시인들은 50%를 느끼면 100% 표현할 수 있지만, 저야 100% 감동을 50%도 표현하기 어렵죠. 대신 시가 언어의 유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차라리 진솔하게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써온 시들을 한 권의 시집으로 엮는 데 무려 25년이나 걸렸다. 현직은 삼성구조조정본부 홍보팀 차장. 지난해 11월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추가했다. 첫 시집 ‘그 시간들의 풍경’에는 지난 세월의 흔적이 자리잡고 있다. 가족, 회사, 전철, 여행, 하루 일과. ‘아내는 아프고/ 나는 바쁘고…/ 아!’로 끝나는 짧은 시 ‘가을유감’이 있는가 하면, 나른한 오후를 묘사한 ‘겨울 햇빛’이 있다. 둘만 모이면 증권에 부동산에 재테크 이야기를 할 때, 시인이 되기를 꿈꾸던 사람은 소망을 이뤘다. 첫 시집에 마흔의 세월을 털어버리고 그는 진짜 시인이 되려 한다.
< 김현미 주간동아 기자 > khm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