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국방백서의 발간을 돌연 무기 연기한 것은 북한에 대한 ‘주적(主敵)’ 표현을 둘러싼 군 안팎의 논란을 우회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적 논란이 국론 분열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까지 보이자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달 중순 주적 표현을 유지한 채 예정대로 백서를 발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같은 방침은 우선 북측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먼저 주적 표현에 손댈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경협추진위원회(경추위) 2차 회의가 북측의 돌연한 불참선언으로 연기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주적 표현을 계속 문제삼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스스로 주적 표현을 삭제할 경우 북측에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게 뻔한 상황이었다. 보수층과 야당의 거센 반발도 국방부로서는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국방부로서는 주적 표현을 유지한 채 백서 발간을 강행하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당장 정부 내에도 북한의 반발로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이라며 그에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백서 발간 무기 연기는 판단을 유보한 것이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가 “현 상황에선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국론분열만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런 결정에 대해선 지나치게 정치논리를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어쨌든 현 정부 임기 내에 국방백서가 발간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국방부가 ‘다른 형태의 문서’ 발간 방침을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른 형태의 문서란 현 정부 안보정책의 ‘결산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되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부가 백서 발간을 무기 연기한 것은 무엇보다도 향후 닥쳐올지도 모를 남북관계의 대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물론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백서가 발간될 경우 현 정부 임기 내 남북관계 개선은 아예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로서는 달리 마땅한 대안이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북측에 어느 정도 긍정적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조만간 대북 접촉을 갖고 2차 경협추진위원회 재개 및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당국회담 개최 등 각종 회담 재개 가능성을 타진할 방침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는 언제나 그렇듯이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