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사는 지난해 9·11테러가 발생한 직후 순직 소방관과 경찰관 등의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으로 1000만달러(약 125억원)를 내놓았다. 이는 테러 여파로 실의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에게 적잖은 힘이 됐다. GE의 자선행위에 자극받은 다른 기업들도 기금 모금에 동참해 며칠 새 수억달러가 마련됐다.
미 경제 격주간지 포천은 이처럼 사회공헌에 앞장서는 GE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지난달 초 선정했다. 매년 수익금 중 1억달러 이상을 사회공헌활동에 쓰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데 따른 소비자들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GE의 사회공헌활동이 장기적으로는 수백억달러의 수익을 회사 측에 안겨줄 것으로 분석한다. 기업의 ‘사회 환원’이나 ‘사회 공헌’은 기업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행위라는 것이다.
▽사회 환원은 장기적인 투자〓‘기업의 전략적 사회공헌 활동’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황창순(黃昌淳) 교수는 “과거에 기업들은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했지만 최근엔 이런 활동이 궁극적으로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투자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조사기관인 인바이로닉스 인터내셔널이 2000년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책임을 잘 지키는 기업은 이미지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경영대 신유근(愼侑根) 교수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얼마나 매출 증대에 영향을 주는지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거대 기업들이 대부분 수익의 1% 이상을 여기에 쓰고 있다는 데서 학계는 그 상관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미국의 머크사. 활발한 사회공헌활동과 ‘윤리 경영’에 힘입어 공장건립 때마다 해당 지역 주민과 관공서의 반대가 없어 지금까지 수십억달러를 절약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사회 환원 늘어난다〓국내에서 기업의 사회봉사가 체계화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기업이익의 1%를 사회공헌활동에 쓰자는 ‘1%클럽’도 전경련 회장단 주도로 2000년에야 발족했다.
전경련이 발간하는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2000년 주요 국내 기업 193곳의 사회공헌활동 지출액은 7060억원 수준. 전경련 박종규(朴琮圭) 사회공헌팀장은 “기업들의 2000년 사회공헌활동 지출액은 98년에 비해 61.7%나 늘어난 것”이라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1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복지단체를 직접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는 문화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직원들의 봉사활동이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효과가 뚜렷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다수 기업들은 직원들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인해 △회사에 대한 자긍심 고양 △직장 동료간 의사소통으로 팀워크 향상 △공동체 의식 함양 등으로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재계, 사회공헌활동에 체계적 접근〓삼성그룹은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키고 매년 1000억원 이상을 사회 봉사활동에 쓴다. 또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사회공헌활동 백서’도 만들고 있다. 활동 프로그램도 그룹 전체적으로 1000여건에 달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매달 한 번씩 팀별로 계획을 세워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다.
삼성사회봉사단 황정은 차장은 “전 계열사가 직원들의 사회봉사를 장려하는 인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실질적인 봉사 참여 기회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계열사별 특성에 맞게 사회봉사 아이템을 선정하는 등 전략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 디스플레이 제품을 생산하는 삼성SDI가 개안(開眼)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 케이스다.
KT(옛 한국통신)도 지난해 1200여명으로 구성된 사랑의 봉사단을 발족시켜 소외계층에 대한 구호활동과 교육지원 사업 등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LG그룹에서는 현재 90여개의 사회봉사팀이 활동중이며 SK텔레콤은 600여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을 통해 무료 정보화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23일 전국 1138개 점포와 본부 부서가 참여하는 전국 규모의 사회봉사활동인 ‘큰 은행 큰 사랑 나눔 행사’를 가졌다. 국민은행 김복완(金卜完) 부행장은 “국내 리딩뱅크에 걸맞은 사회적 기여를 하기 위해 이런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