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서방 외교공관에 집중됐던 탈북자 진입사건이 지난주 한국 총영사관에서도 발생함에 따라 탈북자 문제는 종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양상을 띠게 됐다. 무엇보다도 주중 한국대사관이 탈북자 문제의 직접적인 협상 당사자가 됐다는 점에서 한국 측의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은 간접 당사자로서 ‘본인 의견을 존중해 인도적으로 처리하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중국과 해당국에 전달하는 등 양측에 협조 요청만 하면 됐다. 중국도 제3국 추방 형식으로 탈북자 문제를 비교적 신속히 처리해 줬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주중대사관이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면서 한국과 중국 모두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진 것이다.
탈북자들의 한국 공관 진입이 언론에 공개된 것도 향후 처리 과정에 어려움을 더하는 요인이다. 탈북자들은 과거에도 한국 공관에 들어오긴 했다. 하지만 97년 2월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망명요청 사건 이외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한중 양국이 탈북자 문제를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해 6월 장길수군 가족이 베이징(北京)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진입한 이래 기획망명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의 처리 결과는 한국공관을 이용한 탈북자들의 망명 러시로 이어질지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담당 부총리는 16일과 21일 “중국은 들어오는 사람은 처벌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을 막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탈북자들의 ‘공관 진입’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원만히 처리된다고 하더라도 탈북자들의 한국공관 망명러시로 이어진다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중국은 탈북자 문제가 여론에 공개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또 탈북자 문제는 중국과 북한 간의 문제라고 명백히 선을 그어놓고 있다.
한국 정부는 최근 탈북자 문제 처리와 관련, 재외공관에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한 내부지침을 내려보냈다. 이는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정부가 직접 나서서 탈북자문제를 공론화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의 처리가 다소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중국이 한국공관의 경비를 강화해 탈북자들의 한국공관 진입 자체를 원천 봉쇄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베이징〓황유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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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기자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