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퀀-택 포 취화썬 프롬 코리아!"
26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칸 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 감독상을 발표하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데이비드 린치감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객석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영화 외길을 걸어온 한국 영화의 거목 임권택감독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순간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부인 채령씨는 눈물을 왈칵 쏟았지만, 임감독은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27일 오전 2시. 영화제 폐막 파티와 공식 축하 행사에서 겨우 빠져나온 임감독을 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태원 태흥영화사장과 '취화선'의 주역인 영화배우 안성기, 최민식씨가 자리를 함께 했다.
임감독은 "긴 세월을 해외 영화제 수상을 위해 노력했는데 매번 빈 손으로 돌아온 멍에를 갖고 있었다"면서 "나중에는 개인적 성취를 떠나 사명감같은 걸 느꼈고 이번에 바로 그 멍에를 풀어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태원사장이 둘둘 말아 빨간 리본으로 묶인 감독상 인증서(칸 영화제는 황금종려상 등 일부 상외에는 트로피가 없다)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거 한번 보자고 내가 그동안 임감독을 따라다녔다"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장은 또 임감독과 함께 묵묵히 해외 영화제를 겨냥해 작업해 온 세월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비쳤다. 그 모습을 보던 임감독의 얼굴에도 지난 긴 세월의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미국의 아류에서 벗어나 '한국 영화'를 해내고 싶었지요. 그것이 내가 감독으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적잖이 겪었어요."
"외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요. 감독이 무얼 담고자 했는지 비평가들이 읽어내지 못하는 것도 많고. 실패를 했더라도 감독이 뭘 하고자 했는지를 알아줬으면 했었죠."
'우리의 것'과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취화선'은 이번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한 컷 한 컷에 완벽을 기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고 갈채를 보냈다.
임감독은 '에∼' '그…'하며 말을 끄는 탓에 '눌변'이라는 얘기를 듣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달변'에 가까울만큼 거침없고 분명하다.
이번에 감독상을 공동 수상한 아들뻘 나이의 미국의 폴 토마스 앤더슨감독(32)과 비교해 "임감독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는 4페이지가 넘고, 앤더슨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고작 4줄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임감독은 "나처럼 나이가 많아서야 탈 수 있는 상을 그렇게 젊은 나이에 탔다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감독상 인증서를 보여달라고 하자 안성기씨가 옆에서 붉은 리본을 끌러 펼쳐주었다. 그제서야 인증서를 처음 본 임감독은 "영화를 끝내도 쉬는 체질이 아니다. 어쩔 때는 (일)중독 환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어느덧 99번째 작품에 가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 나이에 다시 황금종려상을 노릴 수도 없고….(웃음) 영화제에 대한 아무런 부담없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면 오히려 더 좋은 영화가 나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