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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증권업계 ‘새 판’ 열리나

입력 | 2002-05-27 17:29:00


“지금 증권사들은 ‘시내버스 방식’의 영업을 하고 있다. 노선만 맞으면 어떤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차별화된 서비스가 없다. 이제부터 삼성증권은 서비스를 차별화한다. 버스에 에어컨을 달고 의자를 바꾸듯 우리는 큰손 고객의 자산관리와 투자분석에서 최강자가 돼 은행과 경쟁하겠다.”

요즘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꺼내는 ‘시내버스론’이다.

증권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신한지주의 굿모닝증권 인수는 증권업계 새로운 판짜기의 신호탄이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금융지주회사 변신 노력도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이 대신증권을 인수한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세종 서울 등 중소 증권사도 인수 합병(M&A)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변화의 배경〓지각변동은 증권사 영업환경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사이버 거래 급증으로 증권사 수입에서 가장 비중이 큰 수수료 수입은 한계에 부닥쳤다. 기업공개제도 개편은 증권사에 기회와 책임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불확실성의 증가다. 금융지주회사 증가세는 증권업계를 불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세종증권 이규천 상무는 “실적만 놓고 보면 아직 먹고 살 만하다. 그러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장래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온 업계가 위기의식에 빠져있을 때 터져나온 굿모닝-신한지주의 만남 소식이 업계재편의 방아쇠를 당긴 것. 세종증권 김욱래 연구원은 “증권업계는 날이 갈수록 수익구조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끼리, 증권사-은행간의 다양한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릴린치를 꿈꾼다〓LG증권은 미래 기업모델을 미국의 메릴린치증권사로 정했다. 자산관리 상품운용 기업금융을 강화해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겠다는 얘기다. LG증권 서경석 사장은 “수익구조를 바꿔야 1등을 할 수 있다. 기업금융부문을 강화해야 한다. 소매와 도매를 동시에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은행으로의 변신 전략은 삼성증권도 마찬가지다. 삼성 황 사장도 “국내기업의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을 왜 외국증권사가 맡아서 해야만 하나”라고 안타까워했다.

금융지주회사를 낀 증권사도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한빛증권 신성호 이사는 “은행자금은 남아돈다. 예대마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은행과 증권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해 기업 자금을 조달하고 운영하는 기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리서치 기능 강화〓투자은행이 되려면 리서치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애널리스트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LG증권은 최근 애널리스트 4명을 스카우트했다. 장정욱 차장은 “능력있는 애널리스트는 언제나 누구든 데려온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신증권 이상돈 기획부장은 “24명 수준인 애널리스트를 40명까지 늘리겠다”고 말했다. 한빛증권 신성호 이사는 “리서치 인력을 두 배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업계는 올해 애널리스트 신규 수요가 100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몸집 늘려라〓호황기에 몸집을 불려야 확고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삼성증권은 1등 굳히기, LG 대신 현대 등은 1등 따라잡기에 나섰다. 몸집 불리기는 증권사와 은행간 합병이나 증권사간 합병 때도 유리하다.

대신증권은 올 들어 지점 5곳을 개설했고 사이버영업소도 10곳이나 늘렸다. 올해 지점 확충 목표는 무려 40개.

SK증권 동양증권 제일증권 등 중위권 증권사도 몸집 불리기 노력은 마찬가지다. 모두 올 해 중 5∼10곳의 지점을 새로 낼 계획이다.

새로 지점을 내기 위해 인원 보강에도 나섰다. 대신증권은 2001년 60명을 채용하는 데 그쳤지만 올 상반기 100명을 신규채용하고 하반기에도 60∼100명을 새로 뽑을 계획이다.

▽자산운용사로 변신한다〓미래에셋은 수수료 수입에 큰 비중을 두지 않기로 했다. 지점에 “거래는 온라인에만 주력하는 대신 금융상품 파는 데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수익증권과 뮤추얼펀드를 팔고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투신운용에서 운용에 주력하는 형태다. 자산운용사로 변신하는 셈.

신흥증권 유화증권 등은 상품운용 부문을 늘리는 추세다. 거래 수수료 수입의 한계를 운용 부문 확대로 보충한다는 얘기다.

▽온라인으로 승부한다〓세종증권의 2001년 당기순이익은 107억원이다. 같은 기간 이 회사의 전산개발운용비는 무려 200억원. 키움닷컴증권도 순이익 규모는 100억원 남짓이지만 온라인 시스템 개발 운용에 쏟는 돈은 110억원을 넘는다.

키움닷컴증권 윤수영 이사는 “오프라인 증권사의 온라인 서비스와는 차별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온라인을 통한 공모주 청약자금 대출 △선물 옵션 전용 거래시스템 구축 △ 온라인 상담 및 위험관리 매매시스템 구축 등을 올해 중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