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퀀-택 포 취화썬 프롬 코리아!”
27일 오전(한국시간) 프랑스 칸 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 감독상을 발표하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데이비드 린치감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객석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영화 외길을 걸어온 한국 영화의 거목 임권택감독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순간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부인 채령씨는 눈물을 왈칵 쏟았지만, 임감독은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영화제 폐막 파티와 공식 축하 행사에서 겨우 빠져나온 임감독을 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제작자인 이태원 태흥영화사사장과 ‘취화선’의 주역인 영화배우 안성기, 최민식씨가 자리를 함께 했다.
임감독은 “긴 세월을 해외 영화제 수상을 위해 노력했는데 매번 빈 손으로 돌아온 멍에를 갖고 있었다”면서 “나중에는 개인적 성취를 떠나 사명감같은 걸 느꼈고 이번에 바로 그 멍에를 풀어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태원사장이 둘둘 말아 빨간 리본으로 묶인 감독상 인증서(칸 영화제는 황금종려상 등 일부 상외에는 트로피가 없다)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거 한번 보자고 내가 그동안 임감독을 따라다녔다”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장은 또 임감독과 함께 묵묵히 해외 영화제를 겨냥해 작업해 온 세월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비쳤다. 그 모습을 보던 임감독의 얼굴에도 지난 긴 세월의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미국의 아류에서 벗어나 ‘한국 영화’를 해내고 싶었지요. 그것이 내가 감독으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적잖이 겪었어요.”
“외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어요. 감독이 무얼 담고자 했는지 비평가들이 읽어내지 못하는 것도 많고…. 실패를 했더라도 감독이 뭘 하고자 했는지를 알아줬으면 했었죠.”
‘우리의 것’과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취화선’은 이번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한 컷 한 컷에 완벽을 기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고 갈채를 보냈다.
임감독은 ‘에∼’ ‘그…’하며 말을 끄는 탓에 ‘눌변’이라는 얘기를 듣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달변’에 가까울만큼 거침없고 분명하다.
이번에 감독상을 공동 수상한 아들뻘 나이의 미국 폴 토마스 앤더슨감독(32)과 비교해 “임감독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는 4페이지가 넘고, 앤더슨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고작 4줄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임감독은 “나처럼 나이가 많아서야 탈 수 있는 상을 그렇게 젊은 나이에 탔다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감독상 인증서를 보여달라고 하자 안성기씨가 옆에서 붉은 리본을 끌러 펼쳐주었다. 그제서야 인증서를 처음 본 임감독은 “영화를 끝내도 쉬는 체질이 아니다. 어떤 때는 (일)중독 환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어느덧 99번째 작품에 가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 나이에 다시 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노릴 수도 없고….(웃음) 영화제에 대한 아무런 부담없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면 오히려 더 좋은 영화가 나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칸〓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