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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차원서 간첩조작 입증…최종길교수 의문사 인정

입력 | 2002-05-27 18:35:00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회의실에서 관계자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원대연기자


“30여년 동안 가려져 있던 진실의 한 꺼풀을 국가기관이 벗겨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서울대 법대 최종길(崔鍾吉) 교수 사건과 관련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27일 ‘의문사’로 인정한데 대해 최 교수의 아들 최광준(崔光濬) 경희대 법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결정은 사건 당시부터 국가권력에 의한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88년 검찰이 재조사를 했음에도 입증하지 못했던 사실을 이번에 최초로 국가기관이 공식 인정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확보한 타살 정황 등을 토대로 공권력의 개입을 입증한 것은 큰 성과지만 규명위 권한의 한계로 타살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또 사건이 어떻게 은폐되고 조작됐는지 등에 관한 의혹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유신정권 공작’ 첫 규명▼

▽확인된 사실〓규명위는 최 교수가 간첩 혐의로 조사받은 것이 아니라 그는 당시 유신정권의 국면전환용 공작 대상이었음을 확인했다.

반(反) 유신 시위가 격화돼 정권의 위기가 초래되자 이를 전환하기 위해 간첩사건을 조작하기로 했고 자수간첩의 제보에 최 교수가 연루되자 그에 대한 내사를 시작했다는 것.

그러나 당시 자수간첩의 제보는 “최 교수는 우익적 성향이 강해 공산혁명에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 뿐으로 중정이 무리한 조사를 했다는 게 규명위의 설명이다.

또 중정 수사관 등 관계자의 진술과 법의학자 소견에 따르면 최 교수는 중정의 주장과는 달리 통닭구이, 몽둥이찜질 등 심한 고문을 받았다. 당시 수사라인의 지휘부에 있었던 간부 2명에게서 최 교수가 자살이 아니라 타살됐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자살로 처리하기 위해 감찰실 조사 결과를 축소 은폐 조작했으며 이를 위해 현장검증조서와 긴급구속장, 피의자 신문조서 등 각종 서류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타살 명확한 증거 못찾아▼

▽결정 과정과 한계〓규명위는 결정 이전부터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최 교수의 죽음이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인정을 망설였던 게 사실.

이와 관련해 규명위는 간첩이라는 자백을 거부한 최 교수의 행위를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소극적 항거’로 봐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포괄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석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규명위는 타살의 정황은 대체로 입증해 냈지만 타살 행위 자체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당시 수사지휘체계상의 은폐 조작 책임을 이후락(李厚落) 중정부장과 김치열(金致烈) 차장에게까지 묻지 못한 것도 규명위의 한계다.또 현행법상 공소시효 때문에 최 교수 사망에 대한 책임을 사건 관계자들에게 묻지 못한 점도 한계로 보인다.이밖에 최 교수의 타살 여부와 관련해 6명의 법의학자 소견 중 일본학자의 것만 집중 인용한 부분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최 교수 사건의 모체격인 유럽 거점 대규모간첩단 사건(73년 10월 발표) 자체가 조작됐다는 규명위의 확인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