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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主客전도?…특화상품 새시장만들며 주역 부상

입력 | 2002-05-28 18:19:00


언제부턴가 껌을 씹으려는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자일리톨’ 껌을 집어들기 시작했다. ‘껌’ 하면 떠오르던 ‘쥬시후레쉬’나 ‘덴티큐’ ‘후라보노’ 등은 어느새 소비자의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진 이름이 됐다. 틈새시장을 노리는 상품이 주류(主流) 상품을 제치고 해당품목의 ‘대명사’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역전현상은 처음 자일리톨을 내놓았던 롯데제과에서도 짐작하지 못했다. 제품 개발을 맡았던 조경수 팀장은 “처음엔 껌 매출액에서 15% 정도 차지하면 성공이라고 봤으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털어놓았다.

껌뿐만이 아니다. 냉장고 세탁기 소주 화장품 등에서도 기존의 주류 제품이 특화상품에 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화상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로 새로운 것을 찾는 소비자의 취향과 이미 포화된 시장을 키워야 하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제품 대명사’ 자리가 바뀐다〓자일리톨 껌은 ‘입소문’만 아니라 실적으로도 확실하게 일반 껌을 눌렀다. 올해 롯데제과 해태제과 동양제과 등에서 내놓은 자일리톨 껌은 25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3500억원으로 추정되는 올해 연간 껌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자일리톨이 전체 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에 이를 전망이다.

가전제품 시장에서도 이 같은 ‘뒤집기’는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것이 맞벌이 부부의 증가 추세와 맞물려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김치냉장고.

1995년 상품화하기 시작해 이제 갓 8년차인 이 새내기 상품은 한국 소비자에게 소개된 지 30년이 넘은 일반냉장고 시장을 올해 추월할 전망이다. 김치냉장고 시장은 올해 150만대(1조5000억원)에 이를 전망이지만 일반냉장고(양문형 포함)는 131만대(8600억원) 규모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비디오와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플레이어를 하나로 합친 ‘콤보’. 삼성전자에 이어 LG 대우전자가 앞다퉈 시장에 참여하면서 일반 DVD 플레이어 시장을 앞지르고 있다. 2000년 첫선을 보인 콤보는 지난해 7만대 팔린 데 이어 올해는 3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판매액수 기준으로는 콤보(1200억원)가 일반 DVD플레이어(500억원)의 두 배가 넘을 전망.

세탁기시장을 보자. 일반세탁기 판매는 지난해 130만대에서 올해 120만대로 7.7%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앞에서 문을 여는 방식의 드럼세탁기는 매년 150% 이상 성장하며 일반세탁기 자리를 노리고 있다.

대표적 화장품 회사인 태평양의 경우 20∼30대 여성이 일반적으로 쓰는 화장품인 ‘마몽드’ ‘라네즈’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8년에는 62%나 됐다. 하지만 지금은 주름개선, 미백 등의 효과가 있는 ‘아이오페’ ‘설화수’ 같은 특화상품이 59%를 차지하면서 역시 비중이 역전됐다.

전통적으로 소주의 대명사이던 ‘진로’는 ‘참이슬’ ‘산’ ‘잎새주’ 같은 기능성 제품에 자리를 내주고 시장점유율 5% 미만의 미미한 수준으로 몰락했다.

▽새로운 성장엔진 역할〓특화상품은 기존 상품의 영역을 때로 침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므로 시장 규모를 늘리는 긍정적 기능도 한다. 96년 18%가량 커진 국내 껌시장 규모는 97년 9% 성장에 그친 데 이어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는 -10%로까지 떨어졌고 99년과 2000년에도 정체(停滯)가 이어졌다. 그러나 자일리톨 껌이 2000년 하반기에 상품화하면서 전체 시장은 다시 크기 시작해 지난해와 올해는 연간 30∼40% 성장했다.

DVD플레이어 시장도 일반 DVD가 연간 100% 성장하고 있을 때 콤보 DVD가 400% 이상 신장해 전체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또 일반밥솥 시장은 2000년 122만대 이후 연간 판매대수가 120만대 안팎에 머물고 있지만 압력밥솥이 2000년 94만대에서 올해 160만대로 늘면서 전체 관련시장의 ‘파이’도 커지고 있다.

▽포화된 제조업, 탈출구는 새로운 아이디어〓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申鉉岩) 수석연구원은 “언제부터인가 거의 모든 제조업이 과잉생산체제에 들어서게 됐으며 상품도 당연히 포화상태가 됐다”며 “21세기에는 이런 상황을 깨기 위한 새로운 ‘탈출구’로 소비자의 변화된 기호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신(新)개념 상품이 끊임없이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디지털어플라이언스 한용외(韓龍外) 사장은 “백색가전 시장이 포화하면서 업체들은 기능성 제품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며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를 위한 삶는 세탁기, 화장품 전용 냉장고 등이 모두 이 같은 고민을 담을 제품이며 이들 중 어떤 것이 다시 주류의 지위를 차지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