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30일 ‘북한은 중상모략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긴급 성명을 냈다. 공세의 타깃이 국내의 다른 정당이 아닌, 북한에 맞춰진 이례적인 것이었다.
남 대변인은 성명에서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친일전력’을 기정사실화해 비난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1일자 ‘특집기사’를 문제삼았다.
문제의 대목은 ‘아침마다 애비와 함께 일찍 일어나 동쪽 하늘을 향해 궁성요배를 하는 것을 제도화·습성화한 것도 이회창 역도이고, 기모노를 입고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는 장면을 사진 찍어둔 것을 자랑한 것도 다름 아닌 이회창이다…’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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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전례 없이 북한 측의 비난에 맞대응을 하고 나선 것은 북한의 ‘이회창 흠집내기’가 연말 대선정국에서 ‘신(新) 북풍’이 휘몰아칠 가능성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 대변인이 “북한이 남한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국을 만들기 위한 전술을 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후보의 한 특보는 “최근 시중에 나돌고 있는 ‘10월 깜짝쇼’의 핵심은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카드일 공산이 크다”며 “미래연합대표 박근혜(朴槿惠) 의원의 갑작스러운 방북과 최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남북문제로 다 끝난다’는 발언 등이 심상치 않은 전주곡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대응에는 혹시 대선가도에서 작용할지 모를 ‘공작적 요소’를 사전차단하고 북한과 맞서는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국내 보수세력의 결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한나라당 내에서는 북한의 이 후보에 대한 비난공세를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도 일각에서 신중히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북한 측과 한나라당 간의 공방에 대해 민주당은 공식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노 후보의 한 측근은 “한나라당의 전략은 연말 대선을 보혁(保革) 대결로 몰아가려는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고려대 유호열(柳浩烈·북한학) 교수는 “북한이 남한의 대선과 관련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하려는 것 같다”며 “노동신문이 북한 내부 교육용 기관지라는 점에서 남한 정국상황에 맞춰 미리 입장정리를 하려는 의도인 듯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대남 비난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이 후보의 6·15선언 2항 폐기 검토 발언 등으로 빈도수가 조금 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