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포천의 페널티킥 동점골.
결과는 2-2 무승부. 하지만 70세의 노장 체사레 말디니 파라과이 대표팀 감독의 표정은 바짝 굳어있었고 월드컵 직전 사령탑에 오른 남아프리카공화국 조모 소노 감독의 얼굴엔 희색이 가득했다.
2일 부산월드컵경기장에서 B조 첫 경기로 열린 파라과이-남아프리카공화국전. 후반 10분까지 2-0으로 앞서 나가던 파라과이가 경기 종료 직전까지 남아공에 잇따라 추격골을 허용,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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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텅빈 관중석
전반이 파라과이 희망의 무대였다면 후반은 남아공이 또 한차례 아프리카의 저력을 과시한 무대였다.
98프랑스월드컵 16강전에서 최강 프랑스와 연장 접전까지 가는 팽팽한 경기를 펼쳤던 파라과이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희망가를 부르고 있었다.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21세의 ‘킬러’ 로케 산타크루스가 혜성같이 나타나 골결정력 부재라는 팀의 묵은 고질을 단번에 해결한 것.
산타크루스는 이날 조국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강력한 공간 장악과 감각적인 슈팅을 앞세워 남아공 문전을 압박해 들어갔고 마침내 39분 프란시스코 아르세의 프리킥 센터링을 다이빙 헤딩슛으로 연결, 선취골을 뽑아냈다. 산타크루스는 후반 10분에도 페널티지역 왼쪽 모퉁이 앞에서 프리킥을 획득, 아르세가 강력한 휘어차기 슛으로 성공시킨 추가골을 합작해냈다.
파라과이가 두골을 뽑아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후반전 파라과이의 고령 수비라인은 점점 발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바파나 바파나(소년들·남아공 축구대표팀 애칭)’는 이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후반 18분 플레이메이커 모쿠나가 아크 정면에서 강하게 쏜 땅볼슛이 파라과이 미드필더 스트루와이의 발에 맞고 들어가 추격에 불을 붙였고 경기 종료 직전에는 페널티지역 왼쪽을 치고 달리던 스트라이커 주마가 상대 골키퍼의 파울을 유도,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포천이 강하게 찬 볼은 그대로 파라과이 골네트 오른쪽을 출렁였다.2일 부산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2월드컵 B조 예선 파라과이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경기.
스탠드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골 넣는 골키퍼’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37·파라과이)는 카를로스 시몬 주심의 경기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괴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1로 앞서 승리가 확실시되던 후반 로스타임 때 골키퍼 리카르도 타바레이가 남아공의 시부시소 주마를 무리하게 저지하다 팔로 걸어 넘어뜨려 페널티킥을 허용하는 바람에 다잡은 경기를 비겼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그라운드를 나서는 선수들에게 큰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많은 축구전문가들은 파라과이의 16강 진출 관건은 칠라베르트의 공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라고 전망했었다. 결국 이날 파라과이는 칠라베르트의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하고 다잡은 경기를 무승부로 마치는 바람에 스페인(7일)과 슬로베니아(12일) 등 유럽의 강호들과 힘겨운 싸움을 펼쳐야 하는 입장이 됐다.
다만 위안이라면 칠라베르트가 스페인전부터는 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부산〓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