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위의 주인공이 축구 스타라면 장외의 주인공은 서포터스이다. 훌리건에 대한 걱정을 잠깐 잊는다면 서포터스 없는 축구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특히 한일 양국의 서포터스, 그러니까 대한해협 너머의 울트라 닛폰과 한반도의 붉은 악마는 자국의 축구 문화를 발전시킨 튼튼한 버팀목으로서 이번 월드컵에서도 선의의 경쟁과 우의를 다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서포터스의 열기에서 군사문화의 살벌한 공기를 느끼기도 한다. 일치된 구호와 행동을 자랑하는 울트라 닛폰과 붉은 악마를 보며 과거 국민 총동원령 시대의 살벌한 군국주의를 환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붉은 악마가 그렇듯이 일본의 울트라 닛폰 또한 전체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순수하고 낭만적인 열정의 공동체이다. 물론 ‘순수한 열정’이 은연중에 파시즘의 내면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겠으나 우려할 만한 사태는 아직 없다.
두 나라의 서포터스는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시대에 태어난 양국의 쓸쓸한 젊은이들이 스스로 일궈낸 아름다운 공동체이다. 그들은 훈련통지서를 받고 억지로 모이지 않았다. 밀실에 갇혀 길러진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광장을 스스로 창조해낸 것이다.
‘자발적인 참여와 자율적인 운영’으로 요약되는 양국의 서포터스가 이번 월드컵에서 집단 광기의 유혹을 가볍게 뿌리치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응원 문화를 널리 자랑하기를 기대한다. 그 어떤 집단적 강박증도 없이 푸른 잔디 위에 열정과 사랑을 마음껏 쏟아내는, 그리고 저 반대편에서 역시 같은 열정으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스에게 뜨거운 성원까지 보낼 줄 아는 성숙한 젊은이들을 보고 싶다.
정윤수(스포츠칼럼니스트)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