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서민은행으로 알려진 국민은행은 올 10월경 프라이빗뱅킹(PB·부유층의 자산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것) 영업을 시작하기 위해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 4월엔 30명의 정예 직원을 뽑아 현업에서 제외, 개별 교육을 시키고 외국계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로부터 자문도 받고 있다.
고객들의 자산관리를 위해 타 은행은 물론 증권 세무사 등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영입한다는 전략. 이는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4월 기업설명회에서 “고액자산가를 확보하는데 주력할 것이며 PB 출범도 앞당기겠다”고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조흥은행도 보스턴컨설팅의 조언을 받아 9월초 PB에 진출하기 위해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보강하느라 여념이 없다. 대상 고객은 최소 5억원 이상의 예금 보유자로 이전 일반 VIP고객과는 차별화할 예정이다.
올들어 은행들의 부유층 사로잡기 열기가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PB 영업은 이전의 ‘VIP 모시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VIP 모시기’가 과거 대출이자를 낮춰주고 점포를 안락하게 이용할 수 있는 등의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에 주력하던 것과는 달리 PB라는 별도 점포를 통한 종합자산관리라는 무기를 내세우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PB 진출도 줄을 잇고 있다. PB 시장에 먼저 진입한 하나은행 외에도 4월 한미은행이 뛰어들었고 8월엔 신한, 9월엔 국민, 조흥은행이 새로이 진입한다. 은행들은 장기적으로는 자산관리에 대한 수수료를 도입,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계획이다.
▽올들어 PB설립 봇물〓한미은행은 4월 서울 압구정동에 PB점포인 로열플라자를 열고 본격적인 ‘자산관리’에 돌입했다. 금융상품에 대한 재테크 상담은 물론 변호사 세무사 등이 법률 세무상담도 하고 있다. 특히 자산가들의 주된 관심이 자녀교육이라는 점에 착안, 해외 유학상담과 서류처리 등의 원스톱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목표. 아직은 1개뿐이지만 점차 확대할 계획.
우리은행(옛 한빛은행)도 올들어 은행 안에 별도 공간으로 운영하던 VIP센터 외에 1개의 PB 점포를 열었다. 지난 5개월 동안 새로 끌어들인 자금만도 약 2500억원. 우리은행은 상당한 성공으로 평가하고 올해 안에 PB 점포를 10개 더 열겠다는 목표다. 또 현재는 1억원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는 이용자격을 앞으론 3억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신한은행도 8월 첫 PB 점포를 내기 위해 전문 인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신한은행 측은 “이제까지 우대서비스 위주의 대접이 아니라 금융 비금융 전반에 대한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용고객의 조건도 예금이 10억원 이상인 ‘진짜’ 자산가들.
은행들이 PB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이유는 자명하다. 상위 20%가 창출하는 수익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는 단순한 논리에서다. 게다가 국내의 경우 상위 3% 인구가 전체 금융자산의 67%를 갖고 있을 정도로 부(富)의 집중이 심한 것도 그 이유다.
여기다 고액 예금주들을 끌어들이려는 증권사들의 공격도 은행을 긴장시키는 요인. 삼성, 대우, LG 등 증권사들은 드러내놓고 고객 뺏어오기에 열중하고 있다.
▽차별화한 서비스에 자산관리까지〓은행별로 PB 점포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은 다양하다. 은행 관계자들은 “일반적으로는 1억원 이상의 예금주로 정의하지만 서비스를 받으려면 5억원은 돼야 한다”고 귀띔한다.
은행들의 PB 전략은 이전 VIP에 제공하던 우대 서비스에다 제대로 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추가한다는 것.
실제 은행들은 자산관리에서 ‘확정금리’ 상품과 실적 상품을 다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즉 정기예금이나 적금과 같이 금리가 보장된 상품과 신탁상품을 다루고 있는 것. 하나은행 김희철 PB지원팀장은 “은행은 증권이나 신탁회사와는 달리 완벽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꾸릴 수 있다”며 “자산을 투자할 목적보다는 관리할 목적을 가진 고객들의 ‘해결사’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여기다 자산가들의 관심인 세금문제, 상속문제 등을 다룰 수 있는 법률 세무상담도 제공한다. 다만, 은행별로도 주력하는 서비스에는 다소 차이가 생길 전망. 하나은행의 경우 문화행사, 고객들의 만남 주선 등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민은행의 PB는 자산을 관리하는 역할보다는 ‘불리기’에 중점을 둘 전망. 국민은행 우치구 차장은 “적극적인 투자를 원하는 고객이 주된 타깃”이라고 강조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