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 한기택 재판장의 이례적인 판결문이 논란을 빚고 있다. ‘포병으로 입대해 선임병으로부터 포사격 절차 등에 대한 암기를 강요당하고 욕설과 구타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병사’를 국가유공자로 판결했다 한다.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이 병사의 사망은 가혹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고, 이 가혹행위는 그가 감내하기 어려운 것으로 인정된다’며 ‘따라서 그는 군인으로서 직무수행 중 숨진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한다.
가혹행위가 인정된다면 국가는 이 병사에게 손해를 배상할 수는 있어도 국가유공자로 대우할 수는 없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법률 제6648호) 제2조는 국가유공자를 ‘자손들에게 귀감이 되는 애국자’라 규정하고 있다. 앞의 자살한 병사가 과연 ‘자손들에게 귀감이 되는 애국자’란 말인가.
포병의 군기는 매우 엄격하다. 포사격 절차를 눈감고도 숙달하지 못하면 발사해야 할 긴박한 시간에 포탄을 날리지 못하고, 아군 머리 위에도 날리게 된다. 6·25전쟁 때는 물론 베트남전에서도 아군 포에 의해 희생된 병사들이 꽤 많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포의 조준각도를 계산하는 병사나 포를 만지는 포수들은 사격절차 숙달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따라가지 못하면 다른 병사들로부터 멸시를 받게 된다.
목숨을 다루는 의사 세계와 비슷한 환경인 것이다.
더구나 포사격은 정확하고 신속해야 하기 때문에 부대간 경쟁을 시켜 석차를 매기며 경쟁 결과는 지휘관의 장래를 좌우한다.
지휘관은 선임병을 통해 다른 병사들을 훈련시킨다. 따라서 선임병은 늘 긴장돼 있고 신경질적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환경은 자살한 병사에게만 주어진 게 아니다.
그 선임자 밑에는 역경을 이겨내고 있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다.
역경을 이겨내는 병사는 무명용사이고, 역경을 이겨내지 못해 자살을 택한 병사는 ‘귀감이 되는 애국자’라고 판결한 재판장의 상식은 국민의 상식과 매우 동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법률에도 어긋난다.
이 법률 제15조 5항에는 ‘자해자’를 유공자 범주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판결이 유효하다면 기존 국가유공자들의 명예는 한순간에 날아간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지 못한 낙오자가 국가유공자라면 전쟁터에서 화려한 무용담을 남긴 장병에게 주어진 기존의 국가유공자증은 불명예증으로 격하되어 반납돼야 마땅할 것이다.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군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