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디지털 세대의 감독이 만든 아날로그 정서의 영화다. 영화에는 ‘어려웠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가득하다. 포니 택시부터 병에 담긴 서울우유, 연탄, 손으로 뜬 벙어리 장갑, 재래식 화장실, 디스코, 돈 벌러 중동에 간 남편과 춤바람 난 아내까지…. 이로 인해 영화는 ‘그 때를 아십니까’류의 ‘복고 상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1974년생인 김동원 감독은 4년전 자신이 각색 촬영 감독을 맡아 호평을 받았던 16mm 흑백 단편 영화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를 장편으로 ‘업그레이드’해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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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해적’(이정진)과 봉팔(임창정), 성기(양동근)는 달동네에 사는 3총사다. 어느날 똥지게꾼인 봉팔의 아버지가 입원하자 봉팔의 여동생 봉자(한채영)는 병원비를 갚기 위해 술집에 빚을 진다. 봉자는 빚을 갚기 위해 디스코텍에서 일하고 봉자를 좋아하는 해적에게 디스코텍 사장은 “디스코 경연 대회에서 1등하면 봉자를 그냥 데려가라”고 한다. 해적은 봉자를 빼내기 위해 불철주야 연습에 돌입한다.
‘착한 영화’라는 평을 들을 만큼 이 영화에는 심한 폭력도 욕설도 없다. 악역인 술집 주인도 코믹하게 그려질 뿐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아날로그적’ 순정과 순박함을 이야기한다.
추억의 소품을 엄밀히 따져보면 ‘옥의 티’도 적지 않다. 주인공이 교복 자율화 세대인 것으로 미뤄볼 때 시대적 배경은 1984년 이후이나 그 때는 병우유가 사라진 뒤다.
하지만 이런 따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이 영화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디지털 세대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아날로그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속 달동네는 밑바닥 삶의 치열함은 없어지고 포근함만 남은 ‘박제된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는 중반까지 달동네 에피소드에 치중하다 1시간 이상 지나서야 비로소 해적이 디스코왕이 돼야 하는 이유가 나온다. 게다가 하이라이트인 디스코왕에 도전하는 부분이 후반에 급하게 다뤄져 극 전개의 호흡 조절이 매끄럽지 못했다. 15세 이상. 6일 개봉.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