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진화를 믿는다는 작가 문범강
화가 문범강(46)의 최근작 ‘자화상’.
머리를 떼어내 두 손을 받쳐 놓고 ‘몸’이 내려다본다. 머리가 보는지 몸이 보는지, 시선의 교란이 빚어지지만 아무튼 ‘나’는 머리 속에 존재하는 의식의 실체가 궁금하다.
머리와 몸이 절단된 그림은 괴기스럽다. 그러나 엽기 영화처럼 피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과 밝음의 간명한 대조가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긴장을 초래한다. 저토록 치열한 의문이 무섭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현대인들은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듯.
문범강은 워싱턴의 조지타운대 교수로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한국 전시는 5년만이다.
이번 전시 ‘BG MUN-I LOVE YOU’에서는 회화를 비롯해 ‘모든 것을 걸고 도박하는 심정으로 저지른’ 변신을 담은 조각 등 4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8일∼8월11일 서울 세종로 네거리 일민미술관(동아일보사 구 광화문사옥).
조각 작품도 괴기스럽고 엽기적 방식으로 의식과 존재의 근원을 들여다본다. 전시작인 ‘은밀한 노출’은 머리가 절단된 물고기의 뱃 속에 어란(魚卵)처럼 인형의 얼굴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물고기가 인간을 ‘임신’하고 있다. 문범강은 “생명체의 원소는 근본적으로 같지만 몸이 지닌 의식의 차원이 다를 뿐”이라며 “물고기가 자기 몸 이상의 의식을 가지면 인간과 같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의식의 진화’를 믿는다.
또다른 조각 ‘무지’에선 개의 절단된 머리가 처연하게 뭔가를 내려다 보고 있다. 형태는 철망에다 이음매가 성긴 하얀 천을 씌워 간단하게 만들었지만 절단 부위엔 피가 묻어 있다. 개는 머리가 절단된 사실에 대해선 ‘무지’하다. 그처럼 의식의 절단을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또다른 자화상같기도 하다.
문범강이 조각을 시도한 것은 처음. 소재도 철망 헝겊 한지 흙을 비롯해 인형의 얼굴이나 철제 마스크 등 다양하다. 그는 “조각을 시도하면서 아이디어와 표현의 지평이 확대된 게 작가로서 기쁨”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80년대 초반 미국 메릴랜드 대학원 등에서 뒤늦게 미술을 공부했다. 20여년간 보여준 작품들은 색조나 표현 방식, 화면의 구성 등에서 많은 변화를 드러낸다. 그러나 작업의 주제는 의식의 교류와 진화에 대한 집요한 탐색이다. 그는 “선명한 생각없이 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한다”며 “엽기적 표현 방법은 발랄하고 새롭고 엉뚱해 곧 흥미로운 창작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미술 실기를 가르치고 있으나 다른 강사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의식의 진화 등에 대한 ‘강의’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국내전을 계기로 20, 27일 오후 7시 일민미술관 강의실에서 ‘현대 미술에 나타난 섹스와 죽음’을 주제로 강의한다. 뉴욕 미술계의 실례를 중심으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예술계의 동향 등을 전할 계획이다.
일민미술관은 광화문 인근 샐러리맨들의 관람을 위해 전시 기간동안 개관 시간을 밤9시까지로 연장한다. 02-2020-2055
허 엽 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