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어떤 좌우명과 삶의 목표를 갖고 있을까.
한국 최대 그룹 삼성의 총수 이건희(李健熙) 회장. 개인 재산이 상장사의 주가 총액만 1조800억원(3일 종가 기준)에 이른다. 비(非)상장주식과 부동산 및 금융자산까지 포함하면 총액을 가늠하기도 힘들다. 하루에 1억원을 쓴다고 해도 재산에 대한 이자도 다 못 쓰는 셈이다.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올랐던 쌍용의 김석원(金錫元) 회장은 회사 간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좋겠다. 앞으로 이사도 되고 전무도 되고 사장도 될 수 있으니….”
부지런히 일해서 승진하고 내 집을 마련한다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소망은 대기업 총수들에게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이들에게는 돈보다 경영 책임을 맡고 있는 기업 그 자체의 발전이 관심일 수 있다.
이 회장은 가끔 “내가 돈 좀 더 벌자고 이러는 게 아니다. 직원에서부터 내 고향, 내 나라가 좋아지는데 어떤 역할을 하여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자고 하는 것이다”고 강조한다.
현재 한국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주요 2세 기업인들은 자수성가한 오너 1세들의 강력한 카리스마 아래서 자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인지 대부분 존경하는 인물로 부친을 꼽고, 인생의 좌우명을 물려받기도 했다. 또 전문경영인들은 ‘일’에 대한 정열과 집착이 보통사람보다 훨씬 강한 편이다.
▽아버지의 선물〓SK㈜ 최태원(崔泰源) 회장은 선친인 고 최종현(崔鍾賢) 회장으로부터 들은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세 가지를 잊지 말라”는 교훈을 지키려 한다. △진정한 능력은 재물이나 돈이 아닌 지식에서 나온다 △스스로의 고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 △실천이 중요하다 등이다. 그래서 최 회장은 경영 일선에 나선 뒤 항상 앞서서 배우고 이를 전파하며 실천하려 노력한다.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차회장이 불도저 같이 저돌적인 추진력을 가진 것이나 철저한 현장 중심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아버지인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 창업주를 빼닮았다는 평이다.
고 이병철(李秉喆) 삼성 창업주는 아들인 이 회장이 1978년 삼성그룹 부회장이 됐을 때 ‘경청(敬聽)’이란 문구를 붓으로 써서 선물했다. 이 회장은 “지금 생각해도 좋은 말씀이다. 오랫동안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보니 그 참뜻을 알겠다”면서 자주 임원들에게도 “좋은 경청자가 되자”고 강조한다.
▽CEO 이전에 성실한 인간〓“누구의 것이든, 개인 것이든, 나라 것이든, 시간이든, 돈이든, 어쨌든 낭비는 생각없는 이들이 저지르는 일종의 죄악이다.”
부지런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정몽구 회장이 어릴 때 부친과 함께 살던 서울 청운동 집에는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는 문구가 액자로 걸려 있었다.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돈이 좀 많은 노동자’라고 일컬었던 정주영 창업주의 영향을 받은 현대 계열사 사장 가운데는 비슷한 좌우명을 가진 경우가 많다.
현대아산 김윤규(金潤圭) 사장의 좌우명은 ‘부지런하면 굶어죽지 않는다’이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김 사장이 이런 좌우명을 갖게 된 데는 정주영 창업주와의 사연이 있다. 김 사장이 젊은 시절 당시 정 회장이 “오전 5시에 회사에서 만나자”고 해 시간에 맞춰 출근해보니 정 회장은 이미 4시30분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 회장으로부터 “젊은 사람이 무슨 잠이 그렇게 많으냐”는 ‘핀잔’을 받은 김 사장은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치열한 삶이 아름답다〓CEO는 제트기처럼 고속 질주한다. 글로벌 경쟁의 첨단에 서 있는 경영자들의 하나의 결정이 기업의 미래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수도 있다. CEO들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역동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SK 손길승(孫吉丞) 회장은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형으로 알려져 있다. 손 회장은 “어려운 일을 해낼 때마다 온몸에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복잡하고 힘든 일에 부닥칠 때마다 성취 후의 환희를 미리 연상함으로써 스스로를 일벌레로 만드는 것. 오너 일가가 아닌 샐러리맨 출신으로 국내 3대 그룹 총수에까지 오른 손 회장만의 자기 컨트롤 방법이다. 손 회장의 좌우명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삼성코닝의 송용로(宋容魯) 사장은 수십년 동안 날마다 조깅을 해왔다. 그는 달리면서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LG그룹의 CEO들은 인간 존중을 중요시한다.
LG그룹 총수인 구본무(具本茂) 회장은 ‘약속은 꼭 지킨다’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LG전자 구자홍(具滋洪) 부회장은 ‘Fun & Enjoy’를 기업문화의 모토로 삼는다. 구 부회장은 “진정한 생산성은 재미에서 나온다”며 “일상 업무에서 직원들이 재미를 느끼도록 ‘LG다운 문화’를 만드는 데 노력하자”고 강조한다.
LG에너지 허동수(許東秀) 회장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의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고객의 생각이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
‘정도(正道) 경영’을 다짐하는 좌우명도 많다. LG화학 노기호(盧岐鎬) 사장의 좌우명은 종선여류(從善如流). 선한 것을 따르면 모든 것이 물과 같이 흐른다는 뜻이다.
이밖에 인생만사 ‘사필귀정’(事必歸正·LG카드 이헌출·李憲出 사장)이나 ‘올바르게 살자’(삼성SDI 김순택·金淳澤 사장) 같은 좌우명도 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