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회사는 지난달 가진 기업설명회(IR)에서 “6월 말까지 우리(옛 한빛), 경남, 광주 등 3개 은행의 통합을 끝내겠다”고 자신 있게 밝혔다. 합병을 통해 비용절감과 시너지효과를 내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금융지주회사는 “경남, 광주은행의 독립법인격은 유지하고 인사와 예산의 자율권을 주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한발짝 물러났다. ‘형식적 통합보다는 실질적 통합이 중요하다’는 설명이지만 군색하기 짝이 없다.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의 말 바꾸기가 지방선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경남 광주 등 양 은행의 노조가 통합을 결사 반대하고 있어 지역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선거가 경제를 왜곡하는 사례는 이뿐 아니다. 다음은 진념 전 부총리의 하이닉스 처리와 관련된 발언들이다.
“하이닉스 반도체가 1, 2월 영업이익을 냈지만 이것만으로는 독자생존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3월7일 KBS 라디오방송에서)
“해외유수기업(마이크론 테크놀로지)과 제휴하지 않으면 독자생존이 어렵다.”(4월12일 한 조찬강연에서)
그러나 진 전 부총리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소신을 바꾸었다. 5월31일 경기 이천시의 하이닉스 노조를 방문한 자리에서 “하이닉스는 자력회생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독자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
“풍부한 행정경험을 정치권에서 펼쳐보겠다”며 선거에 나선 그였고 누구보다 하이닉스가 처한 현실과 해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정책의 일관성’보다는 한 표가 더 중요했나 보다.
진 후보가 말을 바꾸자 정부는 몹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후보들이 무책임한 독자생존론을 남발하면 하이닉스 처리가 더 어려워진다”며 개탄했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3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리면서 “선거에도 불구하고 각종 개혁정책은 유지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치권에 휘둘려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지방선거의 틈바구니에서 구조조정 원칙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김두영기자 경제부 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