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자들에게는 조금 낯선 느긋함이 찾아오는 일요일 아침이 갑자기 터져 나온 스피커소리에 점령당한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어떤 시의회 출마자가 뭔가 거창한 공약을 쏟아놓는다. 시민들의 성실한 심부름꾼이 되어 낙후된 도시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겠다는 취지의 유세가 요란한 배경음악과 함께 아파트 창문을 넘어와 휴일의 공간을 넘실거린다. 다른 주민들도 나처럼 짜증을 느꼈을 것이지만, 대놓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스타선수들이 출전하는 오후의 빅게임을 기대하는 즐거움 덕분에 조금은 너그러워졌던 탓일 게다. 선진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희망과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감 사이의 거리는 멀다.
▼후보자들의 큰 공약-거친 말▼
요즘 국민의 마음을 뒤흔드는 두 개의 화두는 선거와 월드컵.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10년, 세 번째의 선거에 임하는 국민의 마음은 그다지 신명나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십 수 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민정치의 열망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데도 시큰둥한 것은 지방정치 10년의 궤적에서 중앙정치의 재판(再版)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부정부패와 수뢰사건으로 처벌받은 자치단체장의 숫자가 급증했으며 중앙무대보다도 훨씬 견고한 연고주의와 동맹세력이 지방정치의 신선한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다.
사정이 이쯤 되면 출마자들의 호소가 소음 또는 직업세탁과 경력세탁 의도를 감춘 음모의 목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매력에 끌려 다가가기보다 그들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는 경계의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구청이 인접한 어느 지하철역 입구에 대형스피커를 설치하고 하루 종일 구청장의 비리를 반복해서 외치는 캠페인에 경의를 표할 유권자가 있을까.
이에 비하면, 월드컵은 열광과 매력 그 자체다. 생면부지 스타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전율을 느끼고 네트를 가르는 골에 절로 함성이 터져 나온다. 열광은 이런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로 가슴이 설레고 감동이 샘솟는 것, 스타들의 헤어스타일, 패션, 몸짓을 탐닉하려는 무방비의 열정이다. 따지고 보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 엄청난 열광의 진원지는 ‘작은 몸짓’에 불과하다. 골대만 있으면 누구라도 한번 차 넣을 수 있는 슛 동작을 더 ‘세련된 그’가 하는 것에 불과하다. 공을 잡고 순식간에 몸을 날려 골대로 밀어 넣는 것은 그야말로 작은 동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에서 세계인을 미치게 만드는 충격이 뿜어진다.
선수들은 전후반 90분 동안 ‘말’하지 않는다. 단지,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면서 분투하는 실제 행위로 관중들에게 답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수사가 없다. 수사와 공약없이 네트에 골을 꽂는 데에만 열중한다. 작은 몸짓으로 대중적 영웅이 탄생하는 것이다.
정치의 생명도 열광에 있다면, 이 시대의 정치는 그런 조건을 상실한 듯하다. 출마자들의 말은 너무 거칠고 거대한 것 투성이다. 정치인이라면 할 수 없이 큰 그림과 화려한 수사를 쏟아내 유권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아야 하지만, ‘작은 사람’들이 ‘거대한 것’을 반복해서 말할 때 감흥은커녕 공허감이 찾아오고 그런 그들과 공모자가 되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하고 싶은 심정이 앞서는 것이다. 정치혐오증 또는 유세현장 기피증은 그렇게 촉발된다. ‘작은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유권자들의 심리는 결국 질 낮은 설전으로 얼룩진 중앙정치가 만들고 단단한 연고동맹에 포박된 지방정치가 부추긴 결과이므로 유세장이 비었다고 해서 섭섭해할 것은 없다.
▼축구처럼 온몸으로 뛰길▼
20세기가 위대한 영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런 영웅을 거부한다. 걸출한 인물이 세계를 놀라게 할 단발적인 사건을 일으킬 수는 있겠으나 세계가 긴밀하게 얽혀있는 현 상황에서는 대세를 뒤바꿀 만한 정치력을 발휘해도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작은 영웅의 시대인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세기와 닮은 점이 있다면, ‘작은 행위’로 뒷받침된 ‘큰 말’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비폭력저항 행위로 가득찬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일대기는 그의 연설에 메가톤급의 위력을 실어주었다. 평생 전장을 누볐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노병을 얘기하면 감동이 실리고, 전쟁내각을 운영했던 처칠이 런던 사수를 명하면 시민들은 참호를 팠다. 모든 출마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는 중앙 정당의 행보에 민감하고 이권에 이끌리던 그들이 이제 거리로 나와 큰 얘기를 쏟아낼 때 선뜻 악수를 청할 사람은 없다. ‘작은 미학’의 향연인 월드컵에 푹 빠지게 되는 이유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