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교육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한자 교육을 옹호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견해 모두 나름대로 정당화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뜻 어느 쪽 손을 들기도 어려울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분야를 대상으로 한자 교육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은 논의에 구체성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흔히 수학 용어는 시대를 초월한 불변의 것으로 생각하지만, 수학을 배운 시기의 한자 교육 정책에 따라 상이한 용어를 배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학교 수학 용어에는 한자화된 것과 한글화된 것이 혼재되어 있다.
수학은 여러 교과 중 학생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과임을 감안할 때,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한글 수학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학습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한글 용어가 상대적인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한글화된 용어가 유발시킬 수도 있는 오개념을 생각하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채꼴은 부채 모양이라는 데서 연유한 용어이며, 마름모는 ‘마름’이라는 풀과 유사하게 생긴 도형이라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부채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상당수의 학생은 중심각이 180°가넘는 경우를 부채꼴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즉 부채의 전형적인 모양과 관련지어 그 개념을 습득하기 때문에 중심각이 180도보다 작은 경우만 부채꼴로 인정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름모의 경우는 더 심각하여, ‘마름’이라는 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학생에게 마름모는 무의미하게 기계적으로 외워야 하는 또 하나의 수학 용어로 다가갈 뿐이다.
반대로 한자 용어가 가져오는 오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변량들이 흩어져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산포도(散布度)’를 학생들은 산에서 나는 포도로 생각하는 웃지 못할 현상은 뜻글자인 한자어를 그대로 한글 음독 표기하여 사용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북한은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수학 용어를 가능한 한 한글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북한의 수학 용어는 대부분 일상적인 평이한 표현을 사용하여 학습자가 친숙하게 의미를 받아들이고, 용어로부터 그 뜻을 쉽게 되살린다는 장점이 있으나, 지나친 한글 풀어쓰기식 접근으로 용어가 갖추어야 할 축약된 간결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학문 체계 속에 일관성 있게 편입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대개의 경우 즉각적인 의미의 파악이 용이한 한글 용어는 의미성을 잘 충족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한자화된 용어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도 있지만 용어를 하나의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규약성의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서 알 수 있듯이 한자 교육의 문제는 국어 교육이나 한자 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다양한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열린 논의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각 분야에서 한글화, 한자화의 문제를 논의하고 이를 메타적인 수준에서 종합하여 한자 교육의 정도를 결정하는 상향식 접근이 필요하다.
박경미 홍익대학교 교수·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