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오후 1시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 위치한 우리은행 세종로지점. 은행에 갈 시간이 넉넉지 않은 직장인들이 짬을 내 은행 일을 보는 시간이다. 창구 행원(teller)이 2명뿐이지만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도 한두 명을 넘지 않았다. 반면 CD(현금지급기) 2대, ATM(자동입출금기) 3대 등 자동화기기 앞에는 5∼8명이 줄을 서 있다.
이 은행 객장의 경우 오후 1시부터 2시 사이 100여명의 고객이 다녀갔지만 넥타이를 맨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
자동화 혁명이 은행과 증권사 창구에서 20, 30대 넥타이부대를 ‘밀어내고’ 있다는 얘기다. 씨티은행 신상렬씨는 “나도 은행원이지만 인터넷 뱅킹을 하고 ATM을 주로 이용하면서 통장이 어디 있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계가 편해요〓넥타이부대만 인터넷 뱅킹을 하는 것은 아니다.
주부 이모씨(35)는 얼마 전 시골 친척에게 빌린 돈 1000만원을 송금하려고 K은행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창구 직원이나 ATM을 통해 보내면 수수료가 5500원인데 인터넷 뱅킹은 500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이씨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오락용으로만 이용되던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뱅킹을 신청했다.
춘천시민 황모씨(41)는 인터넷(www.giro.or.kr)을 통해 자동차세 등 지방세를 낸다. 전기·전화 요금이나 신용카드 할부대금 및 교통범칙금 청구서가 와도 마우스로 10∼30초 만에 처리한다. 이 사이트에서 납부할 수 있는 지로는 무려 3만5000종이나 된다. 작년에 춘천과 제주에서 시범 서비스가 시작돼 대상 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지방세 이외에도 신문대금 보험료 등 각종 지로요금으로 넓어질 전망.
▽증권 보험사도 전산화 박차〓증권사 객장의 모습은 어떨까?
5일 낮 12시45분경 삼성증권 세종로지점. 15명가량 되는 고객의 평균 연령은 어림잡아 55∼60세쯤. 경기 고양시 일산에 거주한다는 김영화씨(60대 초반)는 “은퇴한 지 4년 됐는데 이틀에 한번꼴로 버스를 타고 광화문까지 와 친구들도 만나고 증권사도 들른다”고 말했다.
이 지점엔 시세전광판과 체크단말기를 아예 귀퉁이로 배치했다. 한국투신증권의 박미경 홍보실장은 “현재 74개의 지점 가운데 시세전광판을 가동하는 곳은 6개 지점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국내 최초로 온라인 전용 자동차보험을 내놓은 교보자동차도 폭발적인 성장세다. 인터넷을 통해서만 보험상품을 판매해 인건비를 줄여 보험료를 10∼15% 낮춘 덕분. 5월엔 하루 평균 계약건수가 1100건으로 올라서 영업을 시작한 이후 총 계약 건수는 10만건을 넘어섰다. 시장점유율도 3월 1.3%에서 5월엔 3%로 배 이상 증가했다. 우철희 과장은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목표인 신계약 35만건은 너끈히 이룰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구청·등기소 발길도 줄어〓정보통신의 확산은 동사무소 구청 등기소 등 관공서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4일 오전 10시반 서울 동작등기소. ‘대기자 수 0’으로 표시돼 있었다. 창구가 7개 있지만 4개 창구에는 이용자가 없다. 반면 등기부등본을 발급하는 ‘자판기’ 앞엔 4명이 줄을 서 있었다. 전에는 등기부등본을 한 통 떼려면 오전에 신청해 오후에 받아야 했다. 지금은 1, 2분이면 된다. 대법원의 오석준(吳碩峻) 공보관은 “특히 경매부문과 호적 관련 전산망에 대해서는 일본 관계자들도 와서 보고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동작구청의 김한용 과장은 “올 1·4분기 서면 및 전화 민원건수는 235건인데 비해 인터넷 신청은 302건으로 더 많았다”고 말했다.
▽혜택은 고객에게〓입출금 거래 한 건의 처리 원가는 얼마일까? 창구 직원이 처리할 경우 1400원이지만 자동화기기는 300원, 인터넷 거래는 70, 80원에 불과하다(국민은행의 계산). 사이버 거래 쪽으로 유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국민은행이 작년부터 팔고 있는 인터넷 저축예금은 예금통장을 발행하지 않고 은행 창구거래를 제한함으로써 생기는 원가 절감분을 고객에게 금리 인하 및 수수료 면제 등으로 돌려주고 있다. 금리는 연 2.0%로 기존 저축예금 0.5%에 비해 4배나 된다.
증권사의 사이버 트레이딩 시스템도 마찬가지. 대우증권의 경우 증권사 직원을 통한 매매수수료는 (0.35%+31만7500원)∼0.5%(약정액 기준)다. 하지만 사이버 트레이딩은 0.08%∼(0.14%+1200원)으로 훨씬 싸다. 99년 증시 활황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이트레이더들은 한푼이라도 수수료를 적게 내는 곳을 찾아다닌다. 대우증권의 경우 전체 약정의 60%가 사이버 거래로 일어난다.
▽주된 수혜자〓인터넷 민원자의 대부분이 젊은 세대라는 것은 민원내용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동작구청 김영란 민원처리팀장)
주차단속에 적발된 뒤에 ‘동의할 수가 없다’며 채팅식 글쓰기(∼했구여 등 표현)를 한다거나, 당돌하고 직접적인 문제 제기(우리집 앞에 **** 번호판을 단 차가 세워져 있는데 그 차는 왜 단속 안 하나요)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수고가 많습니다’로 시작하는 장년층식 문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국방송통신대 이영음(李寧音·방송정보학과) 교수는 “인터넷 환경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젊은 직장인들이 정보기술(IT) 혁명의 첫 수혜자 그룹이 됐다”며 “IT 혁명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만큼 해킹 사이버테러 등 부작용 예방에도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