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이래 1년에 한 장씩 꾸준히 발표되다 드디어 네 번째를 기록한 힙합 프로젝트 앨범 ‘2002 대한민국’은 올해 상반기의 눈대목이라 할 만큼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대한민국’ 시리즈가 상찬을 받아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해와 관심의 벽을 뚫고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를 아우르며 ‘힙합의 공동체성’을 지속적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순수한 슬로건으로 출발했으나 종국에는 거대 음반사들의 먹이다툼으로 흐지부지된 90년대 ‘내일은 늦으리’ 시리즈와 이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정신차리기 어려운 다양성의 용광로 시대에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들은 상품미학의 포말 속으로 사라지고, 정통의 본류는 희화화되기 십상이다. ‘대한민국’ 시리즈는 지난 4년 동안 힙합의 시대에 모욕받은 한국 힙합의 권리선언을 충실하게 수행해 왔다.
도프 보이즈가 1977년 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신선하게 샘플링하며 문을 연 ‘2002 대한민국’은 전망이 불투명한 음반시장 현실을 감안할 때 절정을 누렸던 ‘2000 대한민국’의 영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MP3 같은 디지털 포맷으로 추출할 수 없는 복제 방지 프로그램을 탑재함으로써 무분별한 불법 다운로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도전장을 던졌다. 그래서 평소 카피레프트를 주장했던 조PD가 이번엔 불참한 것인지 묻고 싶다.
불법 다운로드와 공유 프로그램은 법적·도덕적 차원의 토론을 떠나 지금 한국의 음반산업을 괴멸로 몰고 가는 주역이다. 메이저 음반사들도 속수무책이었던 이 거대한 인터넷 괴물에 대항해 비주류 힙합이 반란의 기치를 들고 나왔다는 사실이 참으로 한국적인 아이러니가 아닐까?
어찌 됐든 이 프로젝트 앨범은 지리멸렬했던 2002년 상반기 한국 대중음악계를 화들짝 잠 깨우는 문제의식이 충만한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다. 동시에 어느새 10년의 나이를 먹은 한국 힙합의 성숙한 발효를 맛볼 수 있는 내면적인 깊이를 지녔다. 멀티 캐릭터에 의한 드라마투르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거리 시인들의 ‘지기랄’이나, 묵직한 주제를 늠름하게 구현한 디기리의 ‘이곳에서’(도시 이야기)를 꼭 들어볼 것을 권한다. 물론 정품 CD를 통해서!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authodox@empal.com
Tips - 눈대목
판소리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가리키는 말. 예를 들어 ‘춘향가’에서 ‘옥중가’ ‘이별가’, ‘심청가’에서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러 가는 ‘범피중류’, ‘흥보가’에서 ‘제비노정기’와 ‘박타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