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생태학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가/ 니클라스 루만 지음 이남복 옮김/ 255쪽 1만5000원 백의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 사상/ 발터 리제 쉐퍼 지음 이남복 옮김/ 192쪽 1만원 백의
니클라스 루만(1927∼1998·사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독일 최고의 사회학자이다. 하버마스가 사회변화에 주목하면서 사회학의 이론틀을 차용해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모색하는 철학자라면, 루만은 처음부터 ‘사회에 대한 과학’인 사회학의 입장에서 학문보편성의 기치를 내세워 위기에 처한 현대 사회를 구하려 한 사회학자다.
루만은 계산된 위험(리스크)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사회과학자의 역할은 서구의 진부한 사고틀에 매달려 현대에 대한 저항을 규범적으로 요청하는데 있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의 자기기술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양하고 복합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본다.
즉 현대 사회는 서구에서 그 의미에 대한 담론이 형성된 초기에 비해 이미 복합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현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기술되어야 하며 기능적으로 분화된 체계들이 서로 어떤 관련성을 지니면서 변화해 가는지를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부분적으로는 거대 담론의 종말을 선언하는 탈현대 개념의 창안자인 리오타르와 해체론자인 데리다와 공유하는 측면이 있지만, 루만은 ‘차이’를 통해 현대사회에 대한 설명이 선행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이들 탈현대론자들과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다. 루만은 사회이론의 근원을 휴머니즘으로 점철된 주체나 불명료한 개인 개념이 아니라, 스스로를 관찰하는 사회체계에 둠으로써 방법론적 반휴머니즘과 급진적 구성주의의 전략을 택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명하는 데 주체나 인간 개념은 탈역사, 개인주의의 종말, 자본주의국가의 위기 등 당혹스런 주장의 남발 때문에 문제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인간은 기본적인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분해된 채 행위로 계산될 수 있는 의사소통 조작만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사회과학자는 현상학의 방법을 통해 가능한 한 정확하게 사태를 기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회체계이론에 따르면 사회는 정치 경제 법 과학 교육 종교 예술 등 주요 기능체계들로 분화되어 있고, 말 글 전자매체 권력 화폐 법률 진리 믿음 사랑과 같은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매체’를 통해 수행되는 순환적 의사소통의 조작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 기능체계는 역사적 진화의 결과, 외부 세계 및 다른 체계들과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작동한다. 그리고 관찰한 세계에 대한 의사소통의 조작은 각각 체계의 고유한 코드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자기 준거적인 내적 구조를 통해 폐쇄적으로 일어난다.
루만은 세계를 체계이론적으로 아우르려는 거대이론의 구상 속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15년간에 걸쳐 현대사회의 자기기술에 대한 일련의 분석시리즈를 내놨다. ‘사회체계들: 일반이론의 개요’(1984)로 시작해 ‘사회의 사회’(1997)로 마감되는 전무후무한 체계적 분석시리즈는 ‘사회의 정치’, ‘사회의 경제’, ‘사회의 법’, ‘사회의 과학’, ‘사회의 종교’, ‘사회의 예술’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분석은 열정으로서의 사랑, 국가와 국가이성, 개인주의, 윤리, 도덕, 문화, 대중매체, 생태문제 등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루만은 이런 작업을 통해 기존의 사회학 개념들을 자기생산체계의 자기준거적인 역동성의 논리에 따라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사실과 문제에 대해서도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접근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이런 이론적 급진성은 독일의 주류 사회학계에 지속적인 지적 자극을 제공하고 있으며, 평생 논쟁의 상대역이었던 하버마스뿐만 아니라 울리히 벡, 앤서니 기든스와 같은 동료 사회학자들의 이론체계에도 무시 못할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루만의 이론에 대한 연구들이 논평자의 저서인 ‘환경과 사회: 환경문제에 대한 현대사회의 적응’(한울)을 비롯해 다수가 나왔지만, 사회체계이론 자체가 갖는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이론적 구성의 난해함과 이데올로기적 보수성의 혐의 때문에 적극적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할 때 이번에 이 두 책이 이남복 교수에 의해 동시에 번역되어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현대 사회는…’은 루만의 실천적 문제의식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저작이다. 루만은 이 책에서 생태학적 위협에 대해 정치 경제 법 과학 종교 교육 등 주요 기능체계들이 어떠한 반향을 보이는지 탐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각 기능체계들이 자기준거적인 의사소통 순환에 의해 작동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들을 통합시킬 단일의 중심체계 같은 것은 없으며, 따라서 단일한 실천지침이나 대안도 없다.
따라서 성급하게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왜 어떤 체계는 너무 적은 반향을, 또 어떤 체계는 너무 많은 반향을 생산하는지를 살펴봐야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먼저 사회체계이론의 주요 개념과 이론구조를 전개하고, 그 다음 생태학적 의사소통에 대해 각 기능체계가 상이한 작동방식으로 반향하는 것을 사회체계이론 특유의 논리에 따라 재구성하면서 각 체계의 대처능력의 한계와 구조변화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과잉반향을 일으키는 신사회운동, 환경윤리 등 다른 부분체계들을 중심으로 생태학적 위협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헤아려보고 있다.
쉐퍼의 책은 루만의 거대이론의 핵심 사항을 알기 쉽게 풀이한 해설서이다. 이 책에서 쉐퍼는 사회체계이론의 핵심 개념인 의미 체계 자기생산 등을 설명하고, 역사적-의미론적 분석의 모범 사례로 ‘열정으로서의 사랑’의 핵심 내용과 문제의식을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루만이 자신의 거대이론의 개요를 밝힌 ‘사회체계들’의 개념적 구조와 그의 방법론적 전략인 조작적 논리학과 급진적 구성주의를 개괄하고 있다. 끝으로 하버마스와의 논쟁을 다루면서 왜 좌파들이 루만의 이론에 매력을 갖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루만의 거대이론은 현대사회의 위기에 접하여 우리가 서구의 이성중심의 사고에 또다시 희망을 거는 낙관주의자들의 주의주장에서 벗어나 사회현실에 대한 냉정한 성찰을 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노진철 경북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