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은행·증권사에서 자주 강의를 하게 된다. 주로 새 펀드 상품과 자금 운용에 대해서다. 이때 가장 현실적으로 부닥치는 문제는 한국시장에서 장기투자 및 가치투자의 실효성 여부다. 설명회가 끝나고 받는 질문은 늘 ‘단기수익이 날 만한 종목은 어떤 것인가’이다.
물론 한국에서 오랫동안 주식에 투자해온 사람이라면 장기투자 가치투자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 10년을 돌아보면 지수가 500에서 1000을 오가는 급등락 장세였고 장기투자자는 대부분 큰 손실만 보고 시장을 떠나갔다.
펀드매니저들은 전설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을 바람직한 가치투자의 달인으로 여겨왔다. 또 그의 투자기법(The Warren Buffet Way)을 공부했다. 그러나 한국시장에서 적용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싶다.
우선 과거 10년 동안 한국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실세금리를 넘어보지 못했다. 비싸게 돈을 빌려 그보다 훨씬 낮은 이익을 냈다는 뜻이다. 해마다 ROE와 금리의 차이만큼 기업의 가치를 갉아먹은 셈이다.
두 번째는 기업지배구조가 투명하지 못해 꾸준히 주주가치가 훼손돼 왔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이 국제 수준의 기업지배구조와 높은 ROE로 주주들에게 고수익을 가져다주었지만 대부분 기업은 그렇지 못했다.
최근 한국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뮤추얼펀드는 개방형펀드로 만기가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99년, 2000년 집중적으로 팔렸던 폐쇄형펀드는 1년만기 구조여서 대부분의 주식을 500선에서 팔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주식의 본질가치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주식을 500 전후에서 팔아야 했다. 만일 개방형 펀드였다면, 좀 더 길게 투자할 수 있었다면, 투자자는 30∼50%의 손실을 보지 않았을 것이고 증시에 대해 부정적 인식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투자자의 단기 성향과 부합한 만기구조(보통 1년만기)의 펀드만을 발매해 기업의 본질가치가 반영되지 않은 주가 상태에서 펀드를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증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된 측면이 있었다.
최근 한국시장에서 장기투자와 가치투자의 유효성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기업의 ROE가 금리의 두 배에 이르고 있으며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따라 주주가치 증가가 실현되고 있는 까닭이다.
내가 요즘 투자설명회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이런 것들이다.
한국기업이 주주가치 문제에만 충실한다면 적어도 10년 동안은 주식투자의 기대수익률이 채권의 기대수익률보다 높을 것이다. 단 펀드에 포함된 개별 주식의 시장가치가 본질가치에 이르는 데는 장기투자가 필수다. 이를 투자자들이 알아야 한다.
필자는 자산운용회사의 최고경영자(CEO)보다 한국 자본시장에 종사하는 한 명의 펀드매니저로서의 입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앞으로 한국에서 자본시장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투자자가 자본시장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자를 비롯한 증권인들이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지루한 조정국면에 접어든 한국 시장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버핏씨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장기간 평균 이상의 수익이 기대되는 몇몇 주식을 선정하고 그 주식에 여러분의 투자를 집중시키고 시장의 어떤 움직임에도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인내력을 가져야 한다.”
장인환 KTB자산운용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