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와 우리 김대중 대통령의‘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이어 지난해 김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한 합의에 따라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구성돼 최근 서울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가 기대하는 사항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응조치를 내놓지 못했다.
공동연구 기구가 구성되는 초기 실무자급 협의과정에서 한국 측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가 주요 연구과제가 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구 명칭에 ‘교과서’라는 말을 넣자는 한국 측의 안 대신 일본 측 주장인 ‘역사 공동연구’라는 막연한 표현이 채택되었다. 또 정부가 주도하는 ‘지원위원회’에서 연구결과를 교과서 제작에 반영하는 방안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반영 방법이 명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로 연구결과가 반영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 역사교과서는 최근에도 독도 영유권 문제 등과 관련해 또 한번 사실을 왜곡한 바 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부당한 시비는 조선조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1953년 5월 일본인들이 독도에 상륙해 일본 영유권 표시를 하자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수비대’를 결성해 이를 몰아내면서 한일 분쟁이 본격화되었다. 일본은 이후 우익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망언을 계속해왔고 ‘독도는 일본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일본정부의 공식 입장이 견지되어 왔다.
한일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반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은 93년 5월 경주를 방문한 호소카와 야스히로 당시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한국어를 말살했던 일본어 교육과 창씨개명 등을 들어 “참기 힘든 고통을 끼쳤다. 우리의 행위를 깊이 반성하며 마음으로부터 사과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군대위안부 문제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시절 일본 국민이 성금을 모아 “면목 없는 일을 저질렀다. 일본 국민이 모두 사과한다”는 편지와 함께 한국에 전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잘못에 대한 인정이 역사교과서에도 반영되지 않고는 이러한 수준의 사과만으로는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참회한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은 19세기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근대국가를 수립해 20세기에 세계적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근대국가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에 일본은 신사참배나 교과서 문제 등으로 21세기형 국가 건설에 앞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제국주의적 과거에 대한 합리화 작업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질서에 오히려 적응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일관계는 양국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를 둘러싼 한중간의 연대 움직임과 중국 북한의 강경 대응, 중국 및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 등 동북아 외교관계도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일 파트너십’의 장래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앞날도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유병용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한국정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