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13일에는 지방선거가 있고 12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다시 차별과 소외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참정권에서 철저히 차별받고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투표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집에서부터 투표소까지의 이동의 문제와 투표소의 편의시설의 문제다. 물론 정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거소투표제가 있다며 장애인들은 거소투표를 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거소투표제는 절차도 복잡할 뿐 아니라 홍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거소투표제를 알고 있는 장애인은 얼마 되지 않는다. 또한 장애인이라고 해서 거소투표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거소투표든 직접 투표든 그것은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할 문제다.
직접 투표를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이동의 문제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집에서부터 투표소까지의 이동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대부분의 투표소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마련이지만, 집에서부터 나가는 것이 어려운 지체장애인의 경우에는 바로 집 앞에 투표소가 있다고 해도 갈 수가 없다. 따라서 집에서부터 투표소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보도 등 도로의 정비가 필수적이다. 투표소까지 가는 길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며, 횡단보도의 턱이 낮아야 한다. 혼자서는 외출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도우미가 배치되어야 한다.
이동의 문제와 함께 중요한 것은 투표소의 편의시설이다. 투표소가 2층에 있다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투표를 할 수 없게 된다. 투표소가 1층에 있다고 하더라도 계단이나 턱이 있다면 투표를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투표소를 2층이나 계단이 있는 1층에 설치해야 한다면 도우미라도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도우미의 배치는 최후의 수단이다. 도우미 없이 자유롭고 동등하게 투표할 수 있을 때 참정권은 비로소 보장되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투표소가 2층이어서 투표를 할 수 없었던 서승연씨 외 7명의 원고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대상으로 청구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서승연씨에게는 승소를, 나머지 7명의 원고에게는 패소를 결정하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7명의 원고가 패소한 이유는 간단하다. 2층이어서 스스로 투표를 할 수는 없었지만,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서 투표를 할 수 있었으므로 참정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투표소의 편의시설이 안 되어 있었으므로 할 수 없이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서 올라가야 하는 장애인들의 정신적인 피해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다. 스스로 자유롭게 투표소에 들어가는 대신, 여러 사람에게 휠체어를 들려 짐짝처럼 올라가는 것이 과연 진정한 참정권의 행사인가 묻고 싶다.
진정한 참정권의 보장은 이동권의 보장과 투표소 편의시설의 설치가 함께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장애인도 자유롭고 동등하게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참정권 행사이기 때문이다.
배융호 '장애인편의시설 촉진 시민연대'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