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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남찬순]아리랑 축전은 지금…

입력 | 2002-06-10 18:16:00


지구촌이 월드컵 축구에 열광하고 있다.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아쉬움이 이처럼 온 인류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이 또 있었던가. 지구촌 곳곳을 달구고 있는 월드컵 열기로 모두가 흥분과 감동에 휩싸여 있다.

아리랑축전이 열리고 있는 북한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아리랑축전은 북한 측 표현대로라면 ‘그 형식과 규모에서 아직 있어본 적이 없으며 비길 데가 없이 아름답고 고상한 문화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인류 앞에 펼치고 있는 행사’다. ‘21세기 대 걸작’으로 ‘누구나 볼 기회를 놓친다면 일생을 두고 후회할 축전’이다. 그런 대축전이 열리고 있는데도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는 보도다.

4월29일 평양 능라도에 있는 ‘5·1 경기장’에서 개막된 이 축전은 월드컵 폐막보다 하루 이른 29일 막을 내린다. 4월15일로 90회를 맞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했다는 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시간은 모두 1시간20분. 관객이 있든 없든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공연해 왔다.

▼그들만의 축전▼

북한은 아리랑축전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다. 매일 2000명의 외국 관광객을 초청하고 입장료도 50∼300달러로 책정해 ‘한 수입’을 잡아보겠다는 계산이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북한 관광총국 처장이 일본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고 인터넷사이트까지 개설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 아리랑축전은 그들만의 집안 행사가 되고 있다.

북한 측이 관영매체를 통해 발표하고 있는 수만 보아도 아리랑축전의 상황은 짐작이 간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한달 동안 100만명의 북한주민과 50여개국에서 온 700여개 대표단이 축전을 관람했다고 주장한다. 그 100만명의 북한 주민들은 군인 등 동원된 단체 관람객이 대부분이다. 외국에서 온 관람객 수는 아예 밝히지 않고 있다.

우리 측 정보에 따르면 이른바 외국에서 온 관람객 수는 1만∼1만2000명 정도다. 하루 300∼400명이다. 그것도 80∼90%가 중국의 조선족이나 일본의 총련 등 해외동포라는 것이다. 그 같은 수치의 내용은 아리랑축전과 연계해 관광을 시키고 있는 판문각의 외국인 방문객 수만 보아도 드러난다. 판문각을 찾은 해외동포가 아닌 외국인은 지난 한 달 동안 200∼300명으로 하루 10명꼴이었다고 한다.

당초 평양순안공항과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해 남한 사람들을 대거 초청하겠다고 한 북측 얘기도 어느 날 쑥 들어갔다. 그래도 몇몇 남한 인사들은 비공식적으로 아리랑축전을 관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공식적인 방문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월드컵에 온 외국 관광객을 평양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얘기도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결국 ‘예술인들과 재능 있는 청년학생들, 귀여운 어린이 등 10만명이 공연에 참가하는’ 이 축전은 외화벌이보다 북한주민에 대한 사상 교양의 장(場)으로 바뀐 셈이다.

북한체제의 취약성을 감안하면 아리랑축전이 이처럼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외화벌이를 하겠다는 발상이 잘못됐다. 달러를 벌자면 외국 관광객들을 대거 끌어들여야 하는데 우선 밖에서 보는 아리랑축전은 그렇게 매력적인 관광상품이 아니다. 또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의 관광에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여기에다 북한지도부는 관광객들이 몰고올 ‘자본주의 물결’을 뒤늦게나마 심각하게 고려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기껏해야 북한에 동조하는 해외거주 동포들만 초청하는 집안행사가 된 것이다.

▼외화벌이 실패한 행사▼

북한 지도부는 월드컵에 몰려드는 세계인들의 행렬, 그리고 그들이 표현하는 ‘자유의 몸짓’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리랑축전에서 되풀이되는 지도자에 대한 찬양과 구호, 그리고 월드컵에서 골 문이 열릴 때마다 터져 나오는 함성과 박수의 차이를 북한 지도부는 어떻게 인식할까.

아리랑축전에는 아무리 기기묘묘한 장면을 보여준다 해도 월드컵과 같은 열정과 흥분과 자유가 없다. 생동감을 상실한 전체주의 국가의 기계 같은 행사에 불과하다. 88서울올림픽 직후인 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도 그랬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동작보다 인간미 넘치는 행동이 더 아름다운 법이다.

아리랑축전은 내부 동원과 체제선전으로 주민 통제의 효과는 거두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화벌이에는 완전히 실패한 행사다. ‘새장 속’ 관광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손님 없이 판만 벌여놓고 있는 북측의 모습이 보기에 민망하다.

남찬순 논설위원 chans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