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기업에 근무하다보니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인터넷만의 독특한 문화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수시로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해 타사의 새로운 서비스를 분석하기도 하고 트렌드를 파악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 채팅사이트가 젊은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기에 직접 체험해보려고 접속했던 적이 있다. 그때가 오후 9시. 입장하자마자 ‘30/180/70/유/직딩/설 서초’라는 언뜻 봐서는 간첩들의 접선 암호같은 쪽지를 필두로 내 ID로 여성임을 눈치챈 남성 이용자들의 쪽지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힘든 이 쪽지는 알고 보니 나이 30세에 키 180㎝, 70㎏, 차 있음, 직장인, 서울 서초구 거주라는 뜻의 간략한 채팅용 표기법이었다.
“님과 이 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생각 있으면 연락주세요” 정도는 차라리 양반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그런 쪽지에 응답을 안 하면 바로 ‘야 이 XXX아, 너 얼마나 잘났냐? 튕기기는∼. 아유 재수 없어’ 등 욕설까지 섞은 쪽지를 보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쪽지뿐만 아니라 대화방도 ‘강남 사는 섹시녀만 오세요. 오늘밤 우리 집에 올 수 있는 분 환영 나는 OO대학교 킹카, 키 170 이상 쭉쭉빵빵 미녀만 들어와’ 등 지극히 선정적이고 대화내용을 안 봐도 알 수 있는 제목 일색이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90년대 초 PC통신이 대중화될 무렵 함께 대화를 나누던 상대방에게 심한 성적 모욕을 받은 한 여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 익명의 폭력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때 누구나 과감해지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평소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를 서슴지 않기도 하고 상대방에 대한 불만도 가감없이 터뜨린다. 그렇지만 나의 이런 분별없는 행동, 부주의한 말 한 마디 때문에 인터넷 저편의 누군가는 상처받고 가슴아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욕설과 비방, 음란한 일부 내용 때문에 언제부턴가 인터넷을 통한 만남은 불온하고 온라인상의 의사소통은 저속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들, 또 그 속에서 생겨나는 많은 사회적 관계가 그 긍정적인 기능과 역할에도 불구하고 단지 인터넷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거나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성숙한 인터넷문화를 확립하자는 도덕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오프라인 세상에서와 같은 최소한의 예절을 온라인에서도 지켜보자는 것이다. 이는 고매한 인격을 가진 사람만이 지킬 수 있는 어려운 덕목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약속이라고 믿는다.
인터넷 세상에서의 자유와 개방성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혜택이다. 이런 익명성과 접근가능성이 e세상의 미덕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노력했으면 한다.
최승희 라이코스코리아 PR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