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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나뭇결에 스민 삶의 지혜 '조선시대 목가구대전'

입력 | 2002-06-11 17:23:00

조선 19세기 사층탁자(四層卓子)


조선 시대 목(木)가구는 자연 친화적인 한국미의 전형. 나뭇결을 거스르지 않고 치장도 최소한에 그치지만 세련된 비례와 균형미를 뿜어내는 게 그 매력이다.

목가구는 또 사랑방이나 안방을 정리 정돈해 주인의 보이지 않는 기품과 격조, 향기를 우러나오게 하는 ‘방향 장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전통 목가구는 일제 시대와 근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옛 자리를 잃어버렸다. 목기의 그윽함을 아는 일부 ‘선비’들과 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을 뿐.

서울 호암갤러리가 9월1일까지 마련하는 ‘조선목가구대전-나뭇결에 스민 지혜’는 이런 형편에서 조선 목가구의 아름다움과 옛 선인들의 생활속 지혜를 느낄 수 있는 자리다. 책장 필가(筆架) 문갑(文匣) 좌경(座鏡) 의걸이장 반닫이 뒤주 등 181점을 선보이며 목가구전으로서는 최대 규모다.

이번 전시의 총큐레이터를 맡은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 관장은 “목기전은 한국미의 중추와 한국 생활 미술의 근간을 보여준다”며 “쾌적한 면분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비례미 등 한국미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규 용인대 교수(디자인학부)가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았다.

전시품들은 전국 곳곳에 있는 800여점 가운데 엄선했으며 서울대나 이화여대 등 대학박물관의 소장품도 함께 선보인다. 서세옥 화백 등 개인들도 소장 명품을 정 전관장의 권유에 기꺼이 내놨다. 전시품의 제작 시기는 대부분 19세기다.

전시는 사랑방 안방 부엌 등 속성이 서로 다른 생활공간별로 분류된다. 선비들이 거처하고 손님을 맞는 사랑방과 안주인이 생활하는 안방의 가구들은 각각 쓰임새의 특성상 크게 다르다. 부엌 가구도 마찬가지.

조선 19세지 죽제필통(竹制筆筒)

사랑방은 소박 간결 안정미가 우선시돼 목가구들도 간결한 선과 면을 지녔다. 나무도 광택이 없고 소박한 질감의 오동나무나 소나무가 사용됐다. 서안(書案) 사방탁자 책장이 오랜 세월을 견딘 은근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두루마리 종이나 편지를 끼워 보관하는 고비(考備)와 필가(筆架), 붓 등 문방사우를 정리하는 연상(硯床)도 주인의 문향(文香)을 드러내고 있다. 또 담배대 연초함 타구 재떨이 목침 망건통 등도 한데 모아 두어 그곳에 살던 이의 일상의 체취를 맡을 수 있다.

안방은 여성 취향이 반영돼 아담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가구들이 많다. 목가구외에 화려한 나전칠기 등은 이번 전시에서는 제외됐다. 안방의 장과 농, 긴 문갑을 비롯해 몸단장을 위한 필수 기물인 좌경과 비녀 빗을 보관하는 빗접 등이 안방의 고운 자태를 연상시킨다. 부엌의 목가구는 다양한 모양의 소반이 가장 눈에 띈다. 호족반(虎足盤) 등을 통해 부엌 살림을 짐작할 수 있고 뒤주나 궤(櫃)의 모양새도 흥미롭다.

이번 전시는 목가구의 아름다움 뿐만아니라 옛 선인들의 생활을 볼거리로 짐작할 수 있어 교육적 효과도 높다. 호암미술관은 15일 오후 초중고 미술교사를 초청해 조선시대 목가구 개론을 강의한다.

전시는 9월1일까지(월 휴관). 02-771-2381

허 엽 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