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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 휴스 칼럼]한국의 무기는 정신력

입력 | 2002-06-11 18:28:00


이번 월드컵은 내가 1974년부터 취재한 9개 대회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많았다. 특히 그라운드 안팎에서 목격한 한국인의 결속력은 놀라웠다.

여러분의 함성은 상황을 바꾼다. 나는 그 함성에 움츠러들었던 폴란드 선수들에게 이미 이런 점을 얘기했다. 한국이 비록 미국 GK 브래드 프리덜의 벽을 크게 허물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대표팀이 프로투갈을 상대로 최소한 무승부를 기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스피드와 불굴의 정신력 때문이다. 한국 선수들은 빠른데 포르투갈 중앙 수비라인은 너무 느리다. 한국의 공격력과 체력, 강인한 승부욕은 포르투갈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 그러니 믿음을 갖고 선수들에게 “한국이 최고‘라고 기운을 북돋아 주시길.

하지만 축구의 힘은 위험을 잉태하기도 한다. 일요일 일본 젊은이들이 파티 분위기 속에 요코하마와 도쿄 길거리에서 축제를 즐겼을때 모스크바에서는 불타는 차, 경찰의 잔인한 진압 장면과 함께 적어도 한명이 사망했다는 폭동 소식이 전세계로 타전됐다.

멈추라고 호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축구는 리우에서 러시아, 런던에서 멕시코, 세네갈에 이르기까지 원초적 광기를 잠깨우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단연코 질서를 벗어나 길거리에서 고함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는 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즐거울 때는 얼마든지 길거리에서 기쁨을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폭동으로 변질됐을 때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한 지적 존재라는 인간 유전자에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왜 모든 나라가 매번 승리할 때마다 도시의 길거리로 뛰쳐나가야 하는가? 물론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 사상 첫 승을 따낸 만큼 이해할만 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현재 정치인들과 대중이 자신에게 엄청난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패배를 당했을 경우 이 찬사가 분노로 변하리라는걸 잘 알고 있다. 패배는 불가피하고 영광은 이내 등 뒤에 꽂히는 비수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태어나기도 전 인간은 승리와 패배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내심이 부족한 매스미디어와 대중은 현재 자제력을 잃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미 이를 예측했다. 7일자 사설은 한국에 3만7000명의 병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관계가 월요일 축구 경기 때문에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여기 스포츠를 하고, 보도하고, 즐기기 위해 모였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감히 경기장에 가지 못했던 사실에서도 우리는 스포츠의 원형질을 잃고 말았다.

나는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제3자’로서 아시아에서 열린 이 월드컵 대회에서 내 인생의 한 부분을 보내고 있다. 이변은 우리같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변들이 바로 대회를 성공시키고 있다.

86년 멕시코대회 이래 우리가 이번처럼 한치 앞을 예측하지 못한 채 경기장을 찾은 적은 없었다. 세네갈은 프랑스를 이겼고, 미국은 포르투갈을, 크로아티아는 이탈리아를 이겼다.

이런 이변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맞선에 나서는 남녀처럼 이번 대회 매 경기마다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대충은 알지만 오히려 불확실성에 매료되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성취했고 2006년 월드컵 조직위원장이기도 한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는 너무 많은 경기가 플레이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나름대로 적절한 지적을 했지만 또 다른 관점도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축구 수준이 향상되면서 기존 강호들은 앞으로 단 하나도 쉬운 경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 힘내라!

잉글랜드 축구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