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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질서-시민의식 길거리응원 '세계감탄'

입력 | 2002-06-11 18:28:00


월드컵 한국-미국전이 열린 10일 전국에서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은 81개 지역에 100만명이나 됐다. 열광과 흥분의 현장은 11일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인파가 거리에 나섰지만 우려했던 무질서나 반미시위 등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성숙한 질서의식과 시민정신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새로운 응원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국민의 시민의식도 더욱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비를 맞으며 밤 늦게까지 거리를 청소한 서울 광양중 2년 이희권군(14) 등 이 학교 학생 10여명은 “사람들이 떠난 거리를 보니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경기에서 이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청 청소행정과 이상호(李相浩·51) 팀장은 11일 “4일 폴란드전 때는 청소하는데 6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어제는 3시간 만에 끝났다”며 “양은 40여t으로 폴란드전 때보다 10여t 늘었지만 인원과 날씨를 감안하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응원 문화도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서울 지역에는 경기가 진행 중일 때 많은 비가 쏟아졌지만 시민들은 자리를 지키며 응원에 열중했고 뒷사람의 관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대부분 우산도 사용하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야외무대에서 경기를 관람한 회사원 이희근씨(36)는 “내가 우산을 쓰면 뒷사람에게 지장을 줄까봐 갖고 간 우산을 쓰지 않았다”며 “나만 생각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올 초 미국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김동성 선수가 분패한 이후 반미감정의 확산으로 당초 우려됐던 반미시위도 기우에 그쳤다.

경찰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로 미 대사관과 주변 지역에 6000여명의 경찰관을 배치하고 대사관 주변을 차량으로 에워쌌으나 우려와는 달리 아무런 불상사도 없었다.

이날 오전 미 대사관 앞에는 한때 ‘주한미군을 규탄한다’는 유인물이 뿌려졌지만 시민들은 “월드컵 경기와 반미감정은 별개”라며 분별력을 보여줬다.

이와 관련해 현택수(玄宅洙·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시민의식이 성숙해지고 개인주의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가는 것 같다”며 “진정한 개인주의는 집단에 대한 책임의식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태일(朴泰一) 연구위원은 “성숙한 시민의식은 외국에도 ‘보이지 않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비쳐 국가 신인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외신들 반응▼

무승부로 끝난 한ㅁ국과 미국과의 경기에 대해 외신들은 11일에도 일제히 “한국인들은 질서 정연하게 경기를 관람, 최근 뜨거워진 반미감정으로 인해 돌발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켰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11일 “애초 대구경기장을 직접 방문, 한국과 미국의 경기 관람을 고려했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반미 감정으로 인한 돌발 상황을 우려해 관람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으나 응원단들은 별다른 충돌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한국팀의 안정환 선수가 골을 넣은 직후 일부 선수들과 함께 지난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심판 판정 시비에 휩싸였던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의 흉내를 내는 장면은 한국 내 반미 감정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AFP통신도 11일 서울발 기사에서 “예상됐던 반미 시위나 돌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전국 각지에 모여 경기를 관람했던 한국인들은 ‘필승 코리아’, ‘한 골 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압도적인 응원전을 펼쳤다”고 전하고 “흥분한 응원단들은 그러나 질서 정연했다”고 전했다. DPA통신도 안정환 선수와 한국팀 선수들의 ‘오노 제스처’를 언급하며 “한국은 이날 통쾌한 복수를 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내용 면에서는 한국이 이긴 게임이었다. 한국의 서포터스들이 경기 중 리드를 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장감이 적어 보였던 것은 신선했다”고 평가한 98프랑스월드컵 일본팀 전 감독 오카다 다케시의 기고를 실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