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의 작은 주장
한국 광주의 미디어센터에서 그 영문 팜플렛을 발견했다. 여러나라 기자들로 북적대는 넓은 작업실의 가장 구석진 곳, 눈에 띄지 않는 책상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었다.
집어 보니 ‘슬로베니아-유럽에 있는 자연의 보고’라고 되어 있다. 축구자료는 아닌 것 같다. 슬로베니아의 자연, 기후, 명산품, 음식, 와인, 언어, 습관, 통화, 교통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고 가는 방법과 아플 때의 응급처치장소까지 실려 있다.
슬로베니아는 91년에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했다. 지금은 나라의 기반을 닦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시기일 게다. 팜플렛은 ‘세계의 여러분, 매력적인 슬로베니아에 놀러 오셔서 우리를 더 많이 알아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이야기가 바뀌지만 월드컵은 곧잘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에 비유된다. 확실히 전쟁과 닮은 데도 있지만, 물론 전쟁은 아니다. 열한명과 열한명이 싸우는 그라운드 위에서는 대국도 소국도 없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난폭한 대국일지라도, 자신이 불리하다고 해서 전차를 끌고 나올 수는 없다. 선수를 늘려 달라고도 못한다. 작은 나라도 대등하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월드컵이다.
슬로베니아는 월드컵 예선에서 러시아 유고슬라비아 스위스 등 강호들과 싸웠고 플레이오프에서 루마니아를 물리쳤다. 그들의 예선 통과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대국의 내셔널리즘은, 예를 들어 지난번의 솔스레이크시티의 동계올림픽처럼, ‘애국 올림픽’을 연출하기 싶다. 그러나 소국의 애국주의는 오히려 갸륵하면서도 미소짓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포근하면서도 다부진 자기주장을 느끼게 하는 슬로베니아의 팜플렛이었다.
주조 가즈오 축구평론가
정리〓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