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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한강대담]"뭍과 물, 자연과 사람을 잇는 삶의 쉼터로"

입력 | 2002-06-13 19:49:00

강홍빈 서울시 부시장(왼쪽)과 김우창 교수


《김우창(金禹昌·65) 고려대 영문과 교수와 강홍빈(康泓彬·57)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5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앞 선유도공원에서 ‘서울과 한강’을 주제로 대화를나눴다. 문학평론가인‘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 공동대표’인 김 교수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서울 속의 한강을 바라보았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강 부시장은 1990년대말 이후 새로운 한강 개발방식의 이념이 되고 있는 생태학적 사고 등을 강조했다.》

강 부시장〓서울의 역사에서 한강은 서너단계 변화를 겪었습니다. 조선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했을 때 한강은 서울의 변두리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들어 한강변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용산 마포 등에 경강(京江)상인들이 등장하면서 초기 자본주의의 싹을 틔웠습니다. 구한말 철도가 뱃길을 대신하면서 다시 한강과 서울의 관계가 약화됩니다. 그렇게 50여년이 지났습니다. 60년대 급성장과정에서 한강은 손쉬운 택지개발이나 도로개설의 공간으로 취급됐습니다. 80년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한강종합개발계획’으로 현재 한강의 골격이 형성됐는데 그때 한강은 엔지니어링의 대상이었습니다. 홍수에 대처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호안블록 밑으로 하수 통로를 만들고, 강변에 도심 간선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올림픽 이후 특별히 한강의 변화는 없었으나 한강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이 자라났습니다. 90년대말 ‘새서울 우리한강사업’은 물고기의 입장에서도 한강을 보자는 생태적인 개념에서 출발했습니다. 한강을 강남 강북을 나누는, 그래서 다리를 통해 건너야 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강남과 강북을 잇는 이음새(seaming)로 보자는 생각도 싹텄습니다.

김 교수〓한강은 세계적으로 큰 강이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습니다. 이토록 큰 강을 도시 안으로 포용해서 파리의 센강이나 런던의 템스강 식으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조금 얘기를 달리하면 서울의 밀집된 도시공간에서 그나마 자연으로 남아있는 게 한강과 더러 있는 산입니다. 현실의 서울을 떠나서 생각하면 조선 시대 한강의 존재방법이 좋은 게 아닌가 합니다. 둑도 뭣도 없이 그냥 도시는 북쪽에 있고 한강은 너무 큰 강이어서 남쪽에 남아 선유도 압구정 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놀러가는 곳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가면 도나우강이 있습니다. 이 강은 도시 밖에 있는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쌓은 제방마저도 없애야 한다’ ‘제방이 있으니까 도나우강 망쳤다’ 등과 같은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연이란 게 방치된 상태로 보면 가장 좋습니다. 시민들이 답답하게 살다가 와서 보고 지낼 수 있는 자연으로 말입니다.

강〓우리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한강이 인구 1000만의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상황입니다. 강마다 개성이 있습니다. 센강 등 유럽의 강은 1년 내내 비 오는 양이 비슷해 강폭이 100m 정도에 불과합니다만 한강은 강우량의 변동이 아주 큽니다. 유럽의 강은 운하나 다름없어 강 앞까지 시내 중심가가 들어설 수 있지만 한강은 원천적으로 넓은 면적의 하천변을 갖고 있어야 하는 조건입니다.

김〓강우량의 변동이 크다 해도 그 장점을 살리려고 했다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한강변의 넓은 모래사장은 그대로 두면 훌륭한 자연자원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강〓사실 모래사장과 같은 자원을 60, 70년대 개발시기에 아파트를 만드는데 사용해버린 것은 안타까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공적으로 한강을 통제하겠다는 접근방식을 어떻게 디엔지니어링(de-engeneering)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자연스러운 생태계는 땅이 있다가 습한 데가 나오고, 물풀이 자라고 갈대가 자라고 그러다가 얕은 물이 있고 깊은 물이 있고, 물고기가 수초에서 알을 낳고 또 그것 먹고 자라는 곤충도 생기고 해야 하는 것인데 70, 80년대 한강변의 물과 땅을 확연하게 갈라버렸습니다. 하지만 호안블록을 한꺼번에 걷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노후한 것을 교체할 때가 되면 자연형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강관리사업소장이 여름에 해야 할 큰 일 중에 하나가 인부를 잔뜩 동원해 호안블록에 낀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호안블록 구조에도 악영향을 주고 보기에도 안 좋다는 이유에서였죠. 요즘은 반대로 호안블록에다 구멍을 뚫고 여기에다 잡초씨를 심습니다. 그리고 물가에는 말뚝 같은 것을 박고 돌망태를 집어넣어 물고기가 알낳기 좋은 공간을 만듭니다.

한강에 버드나무 회화나무 등 큰 나무를 심고 있는데 이것도 최근 들어 시작한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하천변에 키 큰 나무를 못 심게 했습니다. 수리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하천은 물을 통과시키는 통로여서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이 친구들 표현에 따르면 마치 고속도로에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건설교통부와 함께 수리모형실험을 거쳐 나무를 심어도 한강 흐름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결과가 나온 지역부터 큰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한강을 종합개발하던 70, 80년대부터 큰 나무를 심기 시작했으면 지금 한강변이 기가 막히게 변했을 텐데요. 앞으로 한 20년 정도 지나면 모습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김〓몇가지 대원칙을 서울시와 서울 시민이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강남과 강북은 자연을 통해 연결될 수는 있겠지만 인간활동을 통해 연결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강은 센강처럼 강 이쪽에 있던 사람이 걸어서 강 저쪽으로 건너가 물건을 사고 돌아올 수 있는 강이 아닙니다. 자연중심적인 연결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한강변에 건물 지을 때도 건물 높이를 낮추게 하는 등 실제적인 방안들이 나올 것입니다. 한강변을 자연과 휴식을 중심으로 한 공간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강에 오려면 큰 맘먹고 와야 되고 큰맘먹고 오다 보면 여기와서 큰 일을 해야 합니다. 한강변을 작은맘먹고 와서 작은 일하다 갈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강에 친밀감을 갖고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옛날 50,60년대 제 경험인데요. 당시 홍수 당한 사람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때 큰물 났다 하면 걸어서 전차 타고 와서 한강대교 가서 물 구경하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그런 정도의 친밀감은 전혀 가질 수 없게 돼버렸어요.

강〓사실 한강변의 공원면적은 여의도의 2배가 넘을 정도로 큽니다. 도시와의 접점은 아주 많은 편인데 길이 다 막아버려서 잘 접근이 안되는 것이죠. 최근 완공된 선유도공원의 보행교처럼 한강 인접지역과 강변을 자꾸 이어주려고 합니다. 한강에 닿는 지하철역이 여러 곳 있는데 그곳에도 쉽게 한강에 나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파트단지에도 마찬가지고요.

김〓언뜻 드는 생각으로는 가령 시청 앞에 있는 사람도 ‘한강에 가서 바람 쏘이고 오면 좋겠다’ 하면 올 수 있는, 한강변을 이어가는 교통망을 발전시키면 어떨까요. 저는 북악터널 근처에 사는데 거기 미술관을 도는 버스가 있거든요. 가나아트센터에서 간송미술관 등으로 조그만 미술관들을 지나갑니다. 그 비슷한 시설을 많이 해놓으면 강남북 양쪽에서 쉽게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도로에서 쉽게 한강변으로 빠져 나갈 수 있는 통로도 필요하지만 시내에서도 덕수궁 앞에 있다가 한강 가서 밤에 야경 좀 보고 오겠다 싶으면 가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게 없이는 한강에 공원을 만들어 놓아도 큰맘먹고 오는 사람을 위한 공간, 그러니까 이벤트 중심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강〓다음 시장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지천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천은 일상과의 접점이 많은 곳입니다. 이번에 월드컵 공원을 만들면서 불광천 홍제천을 환경친화적으로 손봤습니다. 이곳은 완전히 구정물이 흐르고 콘크리트가 덮여 있어 사람들은 가지 않던 곳이었어요. 여기에 지천 상류의 지하철 역에서 나오는 지하수로 물을 붓고 호안블록을 걷어냈습니다. 지금은 홍은동에서부터 한강까지 자동차길 하나도 안 건너고 산보도 하고 조깅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김〓시인 김광규씨가 홍제천 근처에 사는 모양입니다. 전에 글 쓴 것 보니까 홍제천이 지금처럼 천변에 집이 많이 들어서기 전에는 아주 좋은 계곡이었나 봅니다. 세검정에서부터 홍제동으로 죽 나가는 계곡의 경관이 좋아서 이사를 했는데 점점 아파트가 들어서고 해서 살 수 없는 곳이 됐다고 그러더군요. 지금 말씀 들으니까 김광규씨가 제일 좋아할 것 같네요. 이제 연방국가처럼 연합도시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 때입니다. 지천과 지역의 작은 공원들을 개발해 서울을 다핵화된 연합도시로 바꿔갈 때에만 주민들이 진정으로 자기가 사는 지역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정리〓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강홍빈 서울시 행정1부시장

·서울대 건축과 졸업

·미국 MIT 건축 및 도시계획 대학원 박사

·서울시 정책기획관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장

▼김우창 고려대 영문과 교수

·서울대 영문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박사

·서울대 영문과 교수

·현 고려대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