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伊패션명가 페라가모 "창업주 손자들 구두포장부터 배운다"

입력 | 2002-06-13 20:00:00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회장 페루치오 페라가모[사진=전영한기자]


이탈리아 패션명가 살바토레 페라가모사(社)의 페루치오 페라가모 회장(56)을 7일 만났다. 창업주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장남인 페루치오씨는 서울 매장 개장식에 참석키 위해 내한했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4층짜리 ‘살바토레 페라가모’ 빌딩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커버하는 이 회사의 모든 제품을 살 수 있는 복합매장이다. 페라가모사는 2001년 9월부터 전 세계 매장의 인테리어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자연광을 활용하고 조명 기구에 베일을 씌워 은은한 빛을 내게 하는 등 개인 살롱의 친밀감과 대형 매장의 현대성을 접목시키는 것이 목표다. 베네치아, 런던에 이어 이 프로젝트의 세 번째 도시로 선택된 곳이 서울이다. 뉴욕과 도쿄에도 내년 초 같은 컨셉트의 매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 중시’에 대해 페라가모 회장은 “한국인들의 패션감각이 페라가모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고의 고객을 위해

“한국인들은 패션 트렌드에 민감하지만 유행을 조신하게 소화합니다. ‘절대로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우리 회사의 패션관에 잘 어울리는 고객들이죠.”

페라가모 회장은 최근들어 몇몇 명품 브랜드들이 점점 타깃 연령대를 낮추는 흐름에 대해 “브랜드 이미지가 어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어린 고객을 겨냥해 저가의 새로운 라인을 만들거나 디자인 컨셉트를 바꾸는 대신 고급화, 보수화 전략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2005년까지 전 세계 페라가모 매장을 고급 사교클럽처럼 새로 꾸미는 것도 고객에게 ‘나는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고급화 전략의 일환입니다. 디자인도 말발굽 무늬 ‘간치니’와 리본 모양의 ‘바라’ 장식 등 심벌들이 풍기는 단아한 브랜드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각 시즌 트렌드에 맞게 조금씩만 변화를 시도할 것입니다.”

●경영기법보다 장인정신 우선

페라가모 회장은 열두살 때부터 여름방학이면 아버지로부터 직접 구두 만드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가 우리 여섯 남매에게 구두 만드는 법을 가르치며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는 우리 회사 브랜드에 대한 자존심, 충성심을 유지하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직원들은 피곤할지도 모르겠네요. 대표가 제품의 제작 공정을 너무 뻔히 알고 있어서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니까….”

페라가모 회장의 아버지는 ‘모든 여성이 공주가 된 듯한 환상에 빠질 수 있게 만들어라’‘구두는 상품이 아닌 예술이다’ ‘경영 이전에 장인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페라가모 회장이 열두살 때 만든 구두를 어머니 완다는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신고 다닌다고 한다.

페라가모 회장 6남매는 페라가모USA사장 등 페라가모사의 요직을 맡고 있다. 이제는 페라가모 회장의 여섯자녀와 조카 등 창업주의 손자 세대가 제품 포장부터 창고 정리까지 각종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페라가모사 ‘3세대’는 생후 5개월짜리부터 30세까지 모두 23명.

“이들에게 모두 가업을 이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집안의 전통을 온 몸으로 체득하게 하면서 ‘일을 해야 돈을 번다’는 냉혹한 세상살이를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의 소비자들도 페라가모 가문의 3세들이 직접 포장한 제품을 착용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월드컵과 명품시장

“이탈리아인들도 한국인만큼이나 축구를 좋아한다는데…”라는 질문에 사업 얘기로 심각해진 페라가모 회장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축구, 참 좋죠. 저도 1961년부터 2년간 피렌체에서 아마추어 축구선수로 뛴 적이 있어요. 솔직히 보는 것 보다 직접 하는 것을 더 좋아할 정도로 축구광입니다.”

경영진의 취향이 반영됐는지 페라가모는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화, 축구공, 스포츠백 등으로 이뤄진 월드컵 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세계 명품 시장의 상황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어제(6일) 저녁 프랑스팀이 우루과이팀과 비긴 경기를 보면서 함께 온 프랑스 스태프를 장난삼아 놀렸어요. 명품시장은 한번 승자가 영원한 승자로 정지해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한 순간에 1등이 아래로 밀려나기도 하고 신예팀들이 정상으로 올라서는 이변이 비일비재 한다고요.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스스로에게 방심을 허용치 않는 ‘명품가 맏아들’의 또 다른 취미는 사냥이다. “은퇴하면 돌아갈 곳”으로 마련해 놓은 그의 주말 휴가지는 피렌체 외각의 시골. 페라가모사가 이끄는 호텔 매니지먼트 회사 ‘룽가르노 알베르기’사가 운영하는 피렌체 외곽의 작은 럭셔리 호텔에 자주 머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감성적인’ 나의 애견 바덴과 함께 수풀을 누비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한 순간들입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