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새우' 요리 [사진=전영한기자]
《인간의 생김생김을 들여다보면 입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 코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입에서 귀, 입에서 눈까지의 간격은 비슷하며 촉각을 느끼는 손과 입의 거리가 가장 멀다. 실제로 당장 혀로 느끼는 미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감각은 후각으로, 코감기에 걸려 냄새를 맡지 못할 때는 맛을 정확히 느낄 수 없음을 떠올리면 이해가 간다. 후텁지근 지루한 날들에 밥 생각이 슬슬 시큰둥해지는 유월. 코를 자극하여 식욕을 되살려 보자. 여기 그 해결책이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향신료! 》
향신료란 식물의 열매, 잎, 줄기, 뿌리 등을 건조시킨 후 분쇄해서 만든 것으로 오랜기간 보관할 수 있고, 적은 양으로도 강한 향을 내는 재주꾼이다(고춧가루 역시 서양에서는 이국적인 향신료가 된다). 교통이 불편하여 나라와 나라 사이가 지금보다 멀었던 옛날, 어렵사리 구한 식물의 향을 좀더 오래 즐기려 만들어진 향신료는 그래서인지 이름부터 이국적인 맛이 느껴지고 그 향 하나 만으로도 평범하던 요리는 신비해진다.
예를 들어 영계백숙에 별모양의 팔각향을 두어개 넣어 한소끔 끓이면 자개장 같은 중국스러운 향이 폭 배고, 같은 백숙에 토마토와 소시지를 썰어 넣고 파푸리카(고춧가루를 닮은 매운 향신료)를 뿌려서 졸이면 남미의 정열이 확 올라온다. 떠먹는 요구르트에 코코넛 가루를 듬뿍 섞으면 브라질의 들큰한 향기가 마구 뿜어져 나오며 마늘과 기름에 국수만 볶아도 거기에 말린 허브를 탁탁 뿌리면 이탈리아의 시골 식탁이 된다. 실로 향신료는 마술사다.
여름에 먹기 좋은 콩국. 뽀얀 국물을 쪽 마신 후 바닥에는 걸쭉하니 갈아진 콩 진액(퓌레·곱게 갈아진 상태)이 남기 마련인데 이를 이용해보자. 오이나 무를 절였다가 꼭 짜서 생채 무치듯 콩 퓌레에 버무린 후 원하는 향신료를 조금씩 첨가하면 색다른 맛을 낸다. 여기에는 허브가루가 들어가서 건강한 맛을 낼 수도 있고 겨자가루나 고추냉이가루가 섞여들어 톡 쏘는 자극을 줄 수도 있다.
푸른 문양이 시원한 접시에 오이와 무를 적당히 돌려 담은 후 위에 올려질 새우를 꺼내자. 냉채용으로 적당한 ‘칵테일 새우’는 팔각향을 두엇 띄운 백포도주에 살짝 데치고 팔각향과 건져내 냉장고에서 차게 식히는데, 팔각향이 새우살에 촘촘히 밴다. 고소하게 버무려진 오이로 아작아작 입안을 차게 한 후 고추냉이 가루를 조금 넣어 무친 무생채와 향긋한 새우 한점을 한 젓갈에 집어 올려 들큰하게 만든 초간장에 톡 찍어 먹자. 고소한 콩맛, 쌉쌀한 무 냄새에 톡 쏘는 고추냉이향이 혓바닥에 깔리고 팔각향이 살마다 풍기는 쫄깃한 새우가 시큼달콤한 초간장에 힘입어 입 안 가득 딴 세상을 만든다. 여기에는 향이 부드러운 곡주나 차게 우려낸 냉녹차가 어울려야 향긋한 매력이 은은히 피겠다.
향신료의 역할은 식욕촉진 이외에도 악취제거나 소화촉진 등을 들 수 있는데, 의약품이 귀했던 고대에는 향신료가 약초처럼 쓰이는 민간 요법도 다양했다. 감기 기운이 있을때 몸을 데워주는 생강차처럼 프랑스에서는 뱅쇼(vin chaud·뜨거운 와인)를 마신다. 레드와인 한 주전자에 오렌지 껍질과 계피를 넣고 뭉근히 끓인 음료로 계피란 향신료가 톡톡히 한몫을 하는 예다. 또, 아랍권 여러 나라에서는 민트차에 설탕을 짙게 우려 연중 내내 마시기도 하는데, 양고기를 자주 먹는 입안을 청정하게 하고 후텁지근한 기운에 정신을 맑게 하는 역할도 역시 ‘민트’란 향신료의 몫이다. 요즘같은 날씨라면 차가운 민트차도 좋겠고, 수박주스나 오미자물에 작은 계피조각을 띄워 수정과처럼 들이켜도 좋겠다.
기원전부터 동서양을 오간 향신료는 중세유럽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더욱 널리 퍼져나가 15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쌀이나 은, 상아 등과의 무역이 가능했을 정도로 가치가 높았다 한다. 이웃나라가 어떤 모양인지도 몰랐을 당시, 사람들은 지구 저편에서 건너온 향신료를 통해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고, 얼마나 많은 꿈을 맛보았을까. 2002년 초여름, 세계는 이미 서로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지만, 카레가루 한 스푼을 코앞에 두고 두눈을 감아보자. 삘릴리 삘릴리 피리소리와 함께 나는 인도로, 15세기로, 더 먼 곳으로 떠난다.
박재은 (파티플래너·요리연구가)
●‘칵테일 새우’만들기 재료
오이 1/2개, 무 50g, 단촛물 1/3컵, 고추냉이가루 1/2큰술, 콩퓌레 6큰술, 새우 100g, 백포도주 한컵, 팔각향 2개, 초간장.
●만드는 방법
1. 새우는 백포도주에 팔각향을 띄워서 데친 후 냉장고에 넣 어 차게 식힌다.
2. 오이는 어슷 썰고 무는 채쳐서 단촛물에 절여 뒀다가 꼭 짠다.
3. 2에 콩퓌레와 고추냉이가루를 섞어 버무린다.
4. 접시에 3을 돌려 담고 2의 새우를 올려서 초간장과 함께 낸다.
*모든 재료가 차가워야 제맛이 나며 콩퓌레와 향신료는 기호에 따라 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