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가 조이한씨(35·베를린 훔볼트대 박사과정·사진)의 시선은 ‘삐딱’하다. 남들 보는대로 정면에서 고개 끄덕이며 보지 않고, 옆면 뒷면 윗면에서 고개를 갸웃대며 때로 슬쩍 들춰보기도 한다 (‘스캔들’을 캐내는데 명수다!).
그가 최근 ‘다른 측면’에서 본 재미있는 미술 얘기를 묶어 냈다.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미술사를 바꾼 ‘명화의 스캔들’을 책 한 권에 담은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웅진닷컴). 그러나 그저 흥밋거리의 소재쯤으로 치부해버리지 말 일이다.
시대와 역사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과 논쟁은 언제나 지배적인 주류의 가치관과 일반적인 통념을 거스르는데서 기인했다. 이 책은 그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미적 가치관과 문화적 이념을 뒤엎는 ‘위험하고 불온한 그림’과 그러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명작들을 보면, 애초부터 명작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명작으로 ‘만들어진’ 것이예요. 명작으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따라가 봤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카라바조, 프리드리히와 마네, 뭉크, 뒤샹을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틀림없는 진리라고 믿고 있거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그냥 두지 않았던 화가들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곱씹어 아무도 의심치 않은 ‘진리와 당연의 벽’을 훌쩍 뛰어 넘은 이들이다.
“제가 특별히 다섯 명에게 주목한 이유는, 자기 시대를 온몸으로 껴안아 작품에 담아 낸 사람들이기 때문이예요. 자기 시대를 산다는 것은 곧 현재를 산다는 말이고, 그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니까요.”
카라바조의 ‘마태와 천사’(1602). 그림 속의 마태는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인’의 모습이 아니다. 벗겨진 이마는 글 쓰는데 집중하느라 주름이 져있다. 펜을 잡은 손은 영 어설프고, 천사가 글 쓰기를 가르쳐주는 양 우아하게 그의 손을 잡고 있다. 게다가 맨발에 한쪽 발바닥은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성인’을 들일에서 돌아온 농부처럼 묘사하다니!
‘성스러운’ 그림을 통해 종교적 심성을 불러 일으키길 기대했던 가톨릭 교회 사제들은 이 그림을 ‘당연히’ 퇴짜 놓았다. 카라바조는 같은 주제로 다시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1892년 베를린에서 열린 뭉크의 전시회. 그로테스크하게 칠해진 그의 그림이 다른 작가와 평론가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모양이었다. 전시회 기간 중 뭉크가 집에 보낸 편지에는 ‘죄 없는 미술 작품이 이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사람들은 개인의 심리적 불안을 형태의 왜곡과 생략으로 대담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을 세상을 암울하게 만드는 음험한 무정부주의자의 ‘반란’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미술사가 마르틴 바른케는 예술 작품에 대한 모든 비판적인 접근을 일종의 ‘우상 파괴’로 봤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다룬 작가들은 그런 맥락에서 모두 ‘우상 파괴자’들이죠. 전통적인 양식, 그 시대의 지배적인 양식을 배웠지만 이를 답습하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는 ‘지금, 바로 이곳’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조씨는 “이들이 일으킨 ‘스캔들’에 당시 사회와 문화의 모습이 보이고, 또 한 사회의 전체적인 문화라는 배경 속에서 작품을 봐야 그 작품의 의미를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