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오셔야 해요! 정말요!”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30)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이다. 그가 악장으로 있는 부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시리즈 콘서트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16강전이 열리는 18일로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최근 한 음악잡지의 설문조사 결과 드보르자크 ‘신세계’ 베토벤 ‘전원’ 등을 누르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교향곡 4위에 선정된 말러의 5번 교향곡을 연주한다. 하지만 부천필은 예매 실적이 부진하자 “예술의 전당에서 8강을 축하하자”며 유난히 젊은 층이 많은 말러팬들을 각개격파 중이다.
잠깐, 이 얘기를 하려고 만난 게 아닌데? 양고운이 부천필 악장이라고?
양고운은 ‘1인 4역’에 도전하고 있다. 올해 초 취임한 부천필 악장으로, 피아노 박종화 및 첼리스트 이강호와 함께 조직한 3중주단 ‘토너스 트리오’ 단원으로, 국내 대표급 솔리스트이자 해외에서도 1급 무대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월드클래스 솔리스트로.
이런 바쁜 활동 속에서 그는 거듭 ‘한방’을 터뜨리고 있다. 토너스 트리오는 지난해 연말 열린 데뷔 연주회에서 ‘한치 오차 없는 정묘함과 따스한 분위기를 가진 앙상블’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4월 교향악축제 중 수원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무대에서도 그의 따뜻한 음색은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또 같은달 유서깊은 빈의 ‘무지크페라인’(음악동우회) 시리즈콘서트에 출연, 사라사테 ‘카르멘 판타지’의 곡중에서 박수가 터져나올 정도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최근에도 그는 작곡가 윌리엄 월튼의 고향인 영국 첼튼햄에서 열린 월튼 탄생 10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첼튼햄 교향악단과 월튼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돌아오자 마자 18일 대곡인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하는 부천필이라는 거함을 지휘자 임헌정과 함께 리드하고,20, 21일에는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 솔리스트로 출연해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 D장조를 협연한다.
그러나 이 순간 그의 관심 1위는 아무래도 KBS교향악단과의 솔로협연 무대. ‘라이벌 교향악단’과 단신으로 ‘일합의 무공’을 겨루는 셈이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제가 좋아하는 작곡가예요. 건조하고 기계적인 것 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한 겹을 들춰내면 암울한 시대에 대한 고뇌, 예술가로서 갖는 내면의 투쟁 등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죠.“
그는 “월드컵 때문에 연주회마저도 열기를 잃을까 걱정”이라며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연주만 만족스럽다면 청중 숫자야 뭐…”라며 입술을 꼭 깨물고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