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빈대사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서 일어난 중국 공안의 탈북자 강제연행 및 한국 외교관 폭행사건을 둘러싸고 한중간 외교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측은 공식적인 외교경로를 통해 사건해결을 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으면서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를 통해 일방적으로 자국입장을 주장하는 등 언론플레이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리빈(李濱) 주한 중국대사는 17일 동아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 팩스로 보낸 보도자료에서 "5월23일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 다수가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한 이후 한국측은 중국측에 이런 종류의 사람들의 진입을 원치도 않는다는 뜻을 표명했다"며 한국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이는 사건 직후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대변인이 제기한 입장을 되풀이한 것.
리 대사는 이와 함께 국내 언론사에 팩스를 보내 “한국 언론이 사건진상을 명확히 알고 있지 않은 것 같다”며 그동안의 한국 언론 보도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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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리 대사의 행동에 대해 우리 정부측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김항경(金恒經) 외교통상부 차관이 14일 리 대사를 불러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중국 측의 공식 해명을 요청했는 데도 이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선 "중국 측이 한국정부와 이번 사건에 대한 협의 자체를 기피하는 듯한 인상마저 있다"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성격규정 등을 둘러싸고 현재 한중 간에 주장이 엇갈리는 대목은 크게 네가지.
중국 측은 △한국이 지난달 23일 이래 탈북자의 대사관내 진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해왔고 △한국 보안요원이 현장에서 탈북자를 데려가라고 협조요청을 했으며 △외교관 폭행은 한국외교관 면책특권을 이용해 중국 공안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고 △중국측 보안요원이 한국 영사부 건물내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중국이 우리 공관을 침해한 사실관계에 기초하지 않고 부정확하며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가 탈북자 진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일이 없으며 △한국 보안요원들이 탈북자를 데려가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고 △우리 외교관들이 중국 공안을 저지한 것은 우리 공관침해 및 탈북자 강제구인을 원상회복시키려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공무집행 방해로 볼 수 없으며 △중국 공안이 영사부내에 진입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이 상반된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데다 국제사회에서 발생한 분쟁은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줄 심판이 없다는 점에서 진상규명 자체가 곤란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중국 측이 일방적 주장을 하는 것도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정부측 분석. 이래저래 이번 사건은 장기과제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