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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양필승/탈북자 안전이 먼저다

입력 | 2002-06-17 18:52:00


탈북자문제에 관해 다소 유연한 입장에 섰던 중국이 돌연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주 중국 한국대사관 영사부에서의 탈북자 연행과 외교관 폭행 및 이어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주장 등은 선양 일본영사관 진입시처럼 중국 당국이 나름대로 사실증명에 자신이 섰기 때문에 강수를 쓰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예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탈북자문제에 관한 한 부정적 의지를 분명히 천명해야겠다는 조바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전자가 됐건, 후자가 됐건 중국당국의 최근 움직임은 동반상승의 파트너로 중국을 인식하는 한국인에게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늘파동-마약범처리-탈북자 인도 등 일련의 사건으로 지난 10여년간 축적된 친중국 정서가 흔들리고 있다. 분명 중국에는 탈북자를 대하는 한국인의 특수한 감정을 이웃의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

▼감정적 대응은 도움 안돼▼

그러나 우리로서는 현재 우리나라 베이징 총영사관에 잠시 몸을 피하고 있는 탈북자 18명과 캐나다 대사관에 있는 2명의 운명이 최대 관심사여야만 한다. 어떻게 이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하느냐에 온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 당국은 우리 언론이나 여론에 의해 적반하장이나 후안무치로 비판받는다고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선회하지는 않는다. 국제사회의 고립이나 여론의 압력도 그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 오히려 문제를 차분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적극적이면서도 실속 있는 대화를 우리는 추진해야 한다. 섣부른 감정적 대응은 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난해 한국인 마약 사범 처형 사건에서도 분명히 확인했다.

우선 우리도 중국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도 이 같은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중국은 계속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교단지를 경비하는 중국 무장공안들은 탈북자 문제로 근무시간이 대폭 늘어나는 등의 고통스러운 생활을 호소하고 있으며 일부 공안 책임자들은 상부로부터 크게 질책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첸치천 외교담당 부총리를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지금까지 탈북자를 무조건 북한에 돌려보내지 않았고 앞으로도 들어오는 사람은 처벌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풀이해 왔다.

특히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인권을 거론하며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은 인권이란 이슈를 적대적인 서방세력이 총칼이 아닌 수단으로 중국의 사회주의체제 붕괴를 획책하는 화평연변을 위한 공격 전술쯤으로 파악한다. 과연 18명의 생명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협상의 상대에게 그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언동이 사태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앞으로도 계속될 탈북자 협상을 위한 큰 틀을 마련하는 하나의 작은 사례를 창출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외교관과 기자에 대한 폭력이라든가 우리 공관에 대한 무단 진입 등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는 영사관 밖으로 끌려나간 탈북자의 신병 인도나 그의 아들이 포함된 나머지 18명의 거취보다 우선될 수 없다.

우리는 1개월 전 일본총영사관에 탈북자 진입시 어떻게 중국이 처리했는가를 다시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공안은 당시에도 이미 공관에 진입한 상황에서 탈북자 모두를 강제로 끌어냈다. 물론 당시 일본영사관 직원은 방관 내지 협조적인 자세를 보인 반면 이번의 우리 영사관 직원들은 같은 동포인 탈북자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 측의 폭행까지도 감수했다. 당시 일본은 초기에 항의의 제스처를 보였지만 중국 측의 치밀한 조사와 역공에 밀려 오히려 국내외적으로 인권 무시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래도 장길수군의 친척들은 보름 뒤 제3국을 거쳐 한국행을 끝내 이루었다. 중국은 결국 보내주기는 보내 주었고 결과론적으로 일본은 외교적으로 망신은 당했지만 당사자들의 인권은 보호해 주었던 셈이다.

▼中 체면 세워주며 실속외교를▼

인권은 외교나 국익보다 우선될 수 있다. 특히 우리와 피를 나눈 북한 동포의 인권인 경우 그와 같은 원칙은 확고히 지켜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생명을 중시하고 인도주의에 충실한 나라나 사회는 늘 흥성했다. 상처 입은 우리의 체면도 중요하지만 당장 18명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중국과 마주 보고 대화를 진행해야 하며 도리어 그들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은 우리 외교와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과시하는 기회일 수도 있다. 물론 협상에는 우리도 잃는 것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양필승 건국대 교수·중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