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이 오만과 자아도취에 취해 상대를 깔봤고 결국 월드컵 무대에서 쫓겨났다는 게 통설이다.
나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우리가 매일 파란과 충격을 경험하는 진짜 이유는 ‘두려움’이다. 강팀들은 세네갈이 프랑스를 무너뜨린 첫 경기에서 충격의 파동을 감지했고 이번 월드컵에서 이변과 파란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포르투갈의 스타 선수들이 한국전에서 거친 파울 플레이에 의존했던 것도 바로 그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탈리아가 한국을 상대로 할 때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의 가슴속에 있는 것은 우월감이 아니다. 자신들이 형편없다는 게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깊은 공포심이다. 백만장자가 된 유럽 선수들은 여러분의 선수들처럼 반드시 이기려는, 쓰러지거나 상대의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그라운드를 달리려는 불굴의 정신력을 못 갖고 있다.
나는 지난 토요일 니가타에서 ‘우시노쓰노쓰키’란 걸 처음 봤다. 일본식 소싸움인데 1000㎏이나 되는 두 소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싸움 전의 의식은 길지만 승부는 순식간에 결정난다. 니가타 주민들은 죽은 소를 먹는다. 그때 한 주민이 “늙은 싸움소 고기는 너무 질겨 햄버거용으로나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에서 바로 그 늙은 싸움소 고기 신세다.
여러분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지난주 나는 이곳에서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길 것이라고 썼다.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용기와 상대를 압박하는 강한 승부욕을 믿었던 것이다.
한국은 이탈리아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신경질이 지나치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물론 그들은 프란체스코 토티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을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토티가 예술을 선보일 시간이나 공간을 내주지 않도록 지시할 것이다. 우리는 토티가 과연 천재성을 입증할지, 신경질을 못이기고 무너질지 지켜보면 된다.
월드컵 본선 32개국 감독들 모두가 당초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를 우승 후보로 꼽았지만 두 팀 다 조별 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여러분도 아르헨티나의 중도 하차가 결정된 직후 에르난 크레스포가 미야기월드컵경기장 그라운드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봤을 것이다. 축구 영웅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벤치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절망과 상처 난 자존심에 괴로워하는 모습도 봤을 것이다.
문제는 그라운드에 ‘축구의 신’과 같은 선수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조 머서는 “천재는 팀과 조화를 이룰 때만 아름답다. 천재가 두드러지면 주변 다른 선수들이 망가진다”고 설파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에는 천재(지네딘 지단)가 있었지만 허벅지 부상을 했다. 아르헨티나에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있었지만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포르투갈 역시 루이스 피구에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그는 이미 발목을 부상한 상태로 레알 마드리드를 위해 너무 많은 경기를 치렀었다.
무엇보다 포르투갈은 인천에서 공포에 질린 나머지 한국의 ‘붉은 전사’들을 걷어차 항복을 받아내려 했다. 사실 그것은 ‘아시아인은 거칠게 다루면 흐트러지고 만다’는 인종주의적 생각이었다. 그들이 잊었거나 절대 몰랐던 것은 한국의 투쟁력이었다.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공산주의를 상대로, 한국을 과소평가하려는 세계의 편견에 맞서 싸워왔다.
이탈리아든 그 다음 상대인 스페인이든 교훈은 간단하다. ‘열광적인 서포터스 앞에서 한국선수들을 걷어찰 테면 차라. 한국은 그라운드에서 반드시 패배의 쓴잔으로 복수할 것이다.’
잉글랜드 축구칼럼니스트 robhu@compuser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