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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늑장 특허’가 신기술 걸림돌

입력 | 2002-06-18 19:14:00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박상철(朴相哲) 교수팀은 96년 말 혈중 호르몬인 ‘DHEA’가 골다공증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의 특허를 출원했다. 특허청은 2년가량이 지난 후에야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는 이유로 등록을 거부했다. 그러나 99년 미국에서는 박 교수팀이 신청한 것과 유사한 내용이 특허 등록되고 각국에서 잇달아 특허를 받아 박 교수팀의 연구결과는 쓸모 없게 돼 버렸다.

개인사업을 하는 A씨도 지난해 새로운 놀이기구를 개발해 신제품까지 만들었으나 특허청으로부터 6개월 이상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사이 다른 업체가 비슷한 기구를 개발해 파는 바람에 투자비만 날렸다.

특허청의 늑장 처리로 특허 실용신안 등 신기술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외 전체 특허출원은 28만9000건으로 세계 5위, 국제특허 건수 비교의 주요 지표인 ‘PCT 국제출원’에서도 지난해 8위를 차지했다. 특히 특허출원 증가율은 지난 4년간 연평균 69.4%나 돼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특허 한 건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지난해 평균 21.3개월로 프랑스 8개월, 독일 10개월, 미국 13.6개월 등에 비해 훨씬 길다. 더욱이 올해 24개월, 2005년에는 32개월까지 걸릴 것으로 전망돼 갈수록 특허기술 보호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기업체에서는 특허심사 처리가 늦어지면서 특허기술 확보를 바탕으로 한 신속한 투자결정을 하지 못해 다른 나라 업체와의 경쟁에서 크게 불리한 상황이다.

이처럼 늦어지는 것은 심사관 1명당 한 해 심사 건수가 303건으로 미국 70건, 유럽연합(EU) 59건, 일본 203건 등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심사관 1명이 담당하는 기술 분야도 미국 17개, 일본 62개, EU 60개인데 반해 한국은 182개나 돼 심사의 전문성,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특허심사는 신속 정확해야 기술개발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데 우리 특허행정 서비스는 두 부분 모두 미흡하다”면서 “특허는 모든 내용이 규명되기 전에도 ‘아이디어 특허’를 인정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아 ‘창조적 아이디어’가 보호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김&장 법률사무소의 백만기(白萬基) 변리사는 “21세기 지식경쟁 사회에서 신속 정확한 특허 행정서비스는 국가의 재산을 지키는 중요한 업무”라며 “제품과 기술의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상황에서 특허처리 행정이 늦어지면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