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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EMS '제조업 부흥' 맡겨 주세요

입력 | 2002-06-19 17:39:00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위치한 ㈜H&T.

3, 4층짜리 공장 건물 5개동이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무실은 중앙에 있는 건물의 2층 일부가 전부. 사장을 포함해 전직원 176명 가운데 불과 25명만이 관리직이기 때문이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에 있는 공장에도 임직원 550명 가운데 관리자는 9명뿐이다.

VTR의 헤드와 수정 진동자,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헤드 등을 생산하는 이 업체의 한해 매출액은 1000억원 남짓. 이 정도 회사면 적어도 관리직이 70명 정도는 되는 것이 보통이다.

H&T가 이처럼 적은 인원의 관리직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은 ‘전자제품 전문생산기업(EMS·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이기 때문이다. EMS는 그야말로 ‘생산만 하는 기업’이다. 고객 업체가 주문하는 제품을 생산만 하면 되므로 신제품 개발, 디자인, 마케팅, 판매 등의 부서가 필요 없다.

경기 광주시 실촌면 에스피컴텍도 마찬가지. 매출액이 98년 104억원에서 99년 517억원, 2000년 1029억원, 2001년 1494억원으로 급성장하는 업체다. 올해는 17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여 불과 4년 만에 17배로 커졌다.

매출이 이처럼 급증한 것은 삼성전자가 자체 생산하던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와 초고속 통신장비, 교환기 등의 생산을 이 업체에 맡긴 덕분. ‘협력업체’가 아니라 ‘EMS 업체’로 불리는 것은 에스피컴텍이 삼성전자 외에 다른 회사에도 유사한 제품을 생산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미국에서 도입돼 ‘제2의 제조업’ 부흥기를 열었던 EMS가 국내에서도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는 EMS 전문기업과 부품 소재 전문기업 등 200여개 업체가 산업기술재단 전자부품연구원 등 관련단체와 함께 ‘한국 EMS 산업협의회’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왜 EMS인가〓일본의 신코전기는 지난해 8월 H&T에 VTR 헤드 부품 생산을 의뢰했다. 그 결과 자체 생산할 때보다 40%가량 싼값에 공급받고 있다. H&T는 신코전기의 부품을 수주하면서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첨단기술도 이전 받아 두 회사 모두 도움이 된 셈.

H&T 정국교(鄭國敎) 사장은 “제품개발, 디자인, 생산, 판매 등을 함께 하던 업체가 생산을 EMS 업체에 의뢰하면 생산비가 20∼30% 줄어들 뿐만 아니라 공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몸집이 가벼워진다”고 설명했다.

에스피컴텍 이용복(李庸馥) 사장도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 주문하면 되므로 재고 부담도 줄고 노사문제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중견 및 중소제조업체들은 신제품 개발, 디자인, 마케팅 등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만 특화하고 생산은 EMS업체에 맡기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것. EMS업체는 많은 업체로부터 비슷한 품목 생산을 의뢰받기 때문에 생산비를 낮출 수 있어 서로 ‘윈-윈 게임’이 된다.

▽‘제조업 공동화 방지에도 기여한다’〓전문가들은 중견 및 중소기업들이 EMS 체제로 개편되면 제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전자부품연구원 이상일(李相日) 벤처사업지원팀장은 “일본의 대기업 가운데 과거 협력업체에 맡겼던 부품 생산을 값이 싼 한국업체에 맡기려는 업체들이 있기 때문에 ‘생산전문업체’로 인정받으면 국내기업과 경쟁하지 않고도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 디지털전자산업과 심학봉(沈學鳳) 서기관은 “같은 품목을 여러 중소기업이 생산해 유휴설비가 많고 경기에 따라 가동률이 크게 변하는 등 생산 효율이 낮았으나 생산이 전문업체로 집중되면 국가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핵심역량이 생산 부문에 있고 외국 EMS 기업에 비해 아직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있어 국내에서는 중소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EMS가 확산될 전망이다.

▽외국의 동향〓세계적인 컴퓨터 및 정보기술 업체인 미국의 시스코시스템스, 델, 컴팩, 스웨덴의 에릭슨, 핀란드의 노키아 등은 부품의 대부분을 EMS 업체에 의뢰해 생산비를 20% 가량 낮추면서 일본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전세계에 48개 공장을 갖고 있는 세계 1위 EMS 업체인 미국의 ‘솔렉트론’은 ‘다양한 지역과 기업’으로부터 생산을 위탁받아 경기변동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컴퓨터 통신기기 등의 생산을 EMS 업체에 의뢰하는 사례가 늘면서 전 세계 EMS 시장규모는 1996년 600억달러에서 지난해 1780억달러로 커졌다. 2004년에는 2600억달러에 이르는 등 매년 41.7%의 높은 성장을 할 것으로 미국의 조사전문 기관 ‘테크놀로지 포캐스터스’는 전망했다.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세계 주요 EMS 기업과 전문생산품목 (2001년)업체매출액(억달러)공장수취급 품목주요 거래업체솔렉트론16852컴퓨터와 주변기기, 휴대전화, 인터넷 스위치, 스위치, 라우터, 의료기기IBM 소니 노키아 컴팩 노텔 델 알카텔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인텔 미쓰비시전기플렉스트로닉스11240컴퓨터, 이동통신 기기, 게임기, TV 셋톱박스시스코 필립스 지멘스 모토로라 마이크로소프트 컴팩 HPSCI 시스템스9151프로세서, 광섬유, I/O인터페이스에릭슨 컴팩 IBM 노키아 노텔 톰슨 델 NEC자빌 서키트4030PC 관련 부품, 통신네트워크 모뎀 등시스코 HP 델 루슨트 노텔 노키아 알카텔 게이트웨이 자료:산업자원부